영월에 있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정의 장릉(사진=김호선기자)
영월에 있는 조선 제6대 임금 단정의 장릉(사진=김호선기자)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면서 예정대로 일정을 예정대로 실시 하지 못한 날이 있다. 짖궂은 날씨로 예정된 일정을 급 변경해야 한다. 대부분 일정대로 진행하지만 부득불 일정을 변경할 때까 있다. 전날부터 진종일 비가 내린강원도 일부 지방은 악천후 일기다. 영월 마대산(1,052m) 계곡에 내린 비로 인해 많은 물이 흐른다. 급류로 이런 날씨면 계곡길을 답사하는 것은 무리다.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

영월 장릉의 묘역과 제각 뒤의 부추꽃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영월 장릉의 묘역과 제각 뒤의 부추꽃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영월군 김삿갓면에는 조선 후기 천재시인이자 방랑시인의 김삿갓 계곡을 답사할 일정이었다. 하지만 비로 인해 관광으로 변경했다. 영월 10경 중 제1경 조선 제6대임금 단종(1441~1457)의 장릉과 김삿갓유적지에 있는 영월 제4경의 자연과 역사, 난고의 유적지 답사로 변경했다. 영월군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뻗어 있는 곳으로 높은 산이 많다. 영월은 어라연(제7경)의 동강과 청령포(제2경)의 서강이 흐르는 아름다운 지역이다. 두 강줄기는 남한강으로 유입되는 강이다.

영월 장릉가는 길 입구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영월 장릉가는 길 입구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영월의 동쪽에는 태백시가 서쪽에는 원주시와 횡성군과 접한다. 남에는 충북제천시와 단양군, 경북의 영주시와 봉화군이 북쪽에는 평창군과 정선군이 있다. 영월은 산수가 수려한 아름다운 고장으로 지붕없는 박물관 군이라 한다.  영월읍에 도착 장릉(사적 제196호)을 찾았다. 비가 내려 우산을 받쳐들고 입장권을 받아 숙연한 마음으로 장릉을 답사했다. 비에 젖어 있는 송림이 더욱 울창해 보이고 솔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통한의 눈물처럼 떨어진다. 장릉은 단종의 왕릉으로 1452년 아버지 제4대 왕 문종이 승하하자 12살 어린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기간(1452~1455)은 고작 3년이다.

장릉 입구의 울창한 숲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장릉 입구의 울창한 숲 전경(사진=김호선기자)

단종은 즉위 2년 만에 숙부 수양대군 제7대 세조의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폐위된 임금이다.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다. 영월은 조선 왕조 최초 폐위된 임금이 묻힌 곳이다. 유배지 청령포는 배를 타고 10여분 강을 건너야 한다. 유배지에는 수많은 소나무가 빼곡하다. 매일 단종이 휴식을 하였다는 소나무가 있다. 일명 관음송(수령 700년, 천연기념물 제349호)이다. 관음송에서 산 능선으로 오르면 망향대가 있다. 단종은 매일 망향대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정순왕후를 생각했다는 돌탑이 있다.

수백년 장릉의 역사를 내려다 보고 있는 보호수(사진=김호선기자)
수백년 장릉의 역사를 내려다 보고 있는 보호수(사진=김호선기자)

단종이 잠들어 있는 장릉까지 가는 10여분 거리다. 소나무 등이 울창한 약간 경사진 길이다. 장릉에 도착하면 다른 왕릉과 다른 느낌이 받는다. 병풍석과 난간석, 무인석 등이 없어 단촐한 양식의 왕릉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장릉을 바라보면서 권력이란 무엇인가? 비운의 어린 왕을 생각하며 당시 사육신과 생육신의 충신들을 되새겨 본다. 단종은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의 세손으로 조선 왕 중에 유일하게 적통을 승계한 왕이다. 장릉을 뒤로 하고 내려 오다보면 장릉 밑 경사진 벼랑에 하얀 부추꽃이 만발해 있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였다는 임흥도 사당(사진=김호선기자)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였다는 임흥도 사당(사진=김호선기자)

단종이 세조 3년(1457)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누구도 시신을 거두지 않았다. 어느날 밤 영월 호장 엄흥도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엄홍도는 야반 도주를 하였다. 이후 조선 제11대 임금 중종이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다.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24년(1698)에 단종으로 왕의 신분을 회복하고 능 이름을 장릉이라 했다고 한다. 장릉에는 노산군 묘를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을 기린 낙촌비각이 입구에 서있다.

단종 제례 등 행사 때 사용하였다는 영천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단종 제례 등 행사 때 사용하였다는 영천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장릉에는 홍살문과 제사 때 사용했다는 영천 샘이 있다.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가묘를 만들었던 엄흥도의 정려각도 있다. 또한 입구에는 단종을 위해 목슴을 바친 종친, 충신, 환관, 궁녀, 노비 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이 조성되어 있다. 장릉은 다른 왕릉과는 왜소해 보이지만 주변의 시설물은 많은 능역이다. 조선 최초의 왕세손인 단종은 조선왕조 27명의 임금들 중 유일하게 국장을 치르지 못한 왕이었다. 2007년 5월 단종이 승하한 지 550년 만에 영월에서 국장이 치러졌다는 장릉이다.

조선 후기 천재시인이자 방랑시인 난고 김삿갓(김립)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조선 후기 천재시인이자 방랑시인 난고 김삿갓(김립)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조선 비운의 왕 단종은 왕손이었지만 어릴적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단종을 낳은 현덕왕후가 출산 하루 만에 산욕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후궁인 혜빈 양씨에게 단종을 보살피게 하여 성장하였다. 아버지 문종도 단종이 12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자 세상에 홀로 남은 어린 왕이었다. 다만 단종을 보좌한 김종서, 성산문, 박팽년 등 생육신과 사육신 등이 세종대왕의 유지를 받은 충신들이었다고 역사는 말한다.

영월 김삿갓면에 있는 난고 김삿갓의 문학관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영월 김삿갓면에 있는 난고 김삿갓의 문학관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장릉에서는 1967년부터 단종문화재가 열리고 있다.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축제로 승화시킨 영월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재다. 올 해에도 지난 4월 25일부터 27일까지 열렸다고 한다. 또한 장릉에는 능말 도깨비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따라서 장릉의 울창한 숲에는 도깨비광장이 조성되어 있다. 언젠가 그 공연을 보았는데 익살스러운 모습에 슬픔이 곁들은 곁든 창극이었다. 내용은 단종을 섬겼던 도깨비와 충신 엄흥도와의 재회 등의 주제로 진행된 기억이다.

김삿갓축제 백일장에서 수상한 수장자 시비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김삿갓축제 백일장에서 수상한 수장자 시비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비운의 왕 단종의 장릉을 참배를 마쳤다. 장릉 앞에 있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명물 곤드래 밥으로 시식한 후 김삿갓유적지로 향했다. 곤드래밥은 별미다. 비는 오락가락을 반복하여 내린다. 난고 김삿갓유적지는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하고 있다. 영월군은 산과 물, 계곡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가는 곳마다 수려한 자연환경이 그림처럼 예쁘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한 폭의 그림이다. 산과 물길이 동양화다. 2009년 김삿갓면은 옛 하동면에서 변경했다. 김삿갓면은 전국에 있는 2,100여개의 읍,면,동 중 유일하게 사람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면이다.

방랑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지인 중 난고와 스님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방랑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지인 중 난고와 스님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난고 김삿갓(김병연 1807~1863)유적지로 들어서면 계곡을 따라 유적지로 간다. 계곡을 흐르는 물길이 무섭게 흐른다. 흐르는 물길은 하얀 거품을 내 품으며 요란스럽게 흘러 내린다. 물안개가 드리워져 좀 더 음산한 느낌까지 들게하는 계곡이다. 김삿갓계곡길은 걷는 도반들이 걷고 싶은 길 중의 하나다. 외씨버선길 12구간이 겹치는 구간이다. 요란한 마포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난고 유적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는 깊은 계곡이라 그런지 어느새 오후 저녁 무렵처럼 보이는 주차장이다. 차 안에서는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노래가 있다. 

마대산에서 흘러 내리는 마포천과 노루목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마대산에서 흘러 내리는 마포천과 노루목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김삿갓유적지 광장 한켠에 우뚝 솟아있는 삿갓 모양의 건물이 있다. 김사갓문학관이다. 문학관에는 김삿갓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한 눈으로 보면서 선생의 얼과 문화 예술의 혼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기록에 의하면 난고는 경기도 양주출신이며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마을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김삿갓은 20세에 영월을 떠나 방랑을 시작했다고 한다. 김삿갓은 그에 조부 김익순을 비난하는 내용의 시로 장원을 한 후 방랑이 시작되었다 한다. 김익순은 홍경래난을 막지 못하고 항복하면서 폐족이 된 집안이다.

유적지 주변 식당 등에서 김삿갓 노래소리가 들리는 난고 유적지(사진=김호선기자)
유적지 주변 식당 등에서 김삿갓 노래소리가 들리는 난고 유적지(사진=김호선기자)

김삿갓문학관에는 알송달송한 방랑시인의 시와 문학 등을 살핀 후 우산을 받쳐들고 문학관 뒤에 있는 김삿갓문학상 수상자 시비들을 살펴본다. 김남조, 신달자, 유안진, 나태주 시인 등 많은 분들의 시들이 서있다. 그 중에 신달자님의 ‘아버지의 빛’이라는 시를 옮겨본다.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 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 땅은 나의 아버지 하산하는 길에 발이 오그라들었다. 신발을 신고 땅을 밟는 일 발톱저리게 황망하다 자갈에 부딪혀도 피가 당긴다. 시 내용을 알 것도 같지만 한참을 고민하게 한다.

생전의 방랑시인으로 착각하게 하는 난고의 봇짐을 맨 뒷모습(사진=김호선기자)
생전의 방랑시인으로 착각하게 하는 난고의 봇짐을 맨 뒷모습(사진=김호선기자)

김삿갓문학관 주차장에서 노루목교를 건너 김삿갓주거지로 향한다. 노루목교 밑을 흐르는 물길이 더욱 사나워진 계곡 물길이다. 주거지 입구에는 김삿갓의 커다란 얼굴 형상의 조형물이 있다.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리고 주변에 괴나리봇짐을 메고 물을 마시는 난고 선생의 모습 등이 있다. 산으로 오르는 길은 마대산을 가는 길이며 작은 다리를 건너면 난고선생이 묻혔다는 묘가 있다. 수년전 답사 때는 움막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흔적이 없다. 마대산은 김삿갓면과 단양군 영춘면이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유적지는 가을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설명이다. 김삿갓선생이 마시고 있는 물맛이 감칠나게 맛있다.

마대산에서 유적지로 흐르는 계곡지류 물길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마대산에서 유적지로 흐르는 계곡지류 물길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김삿갓유적지는 외씨버선길 일부 구간이다. 영월-영양-봉화-청송까지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청정지역을 걷는 길이다. 외씨버선길은 시인 조지운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처럼 생겼다 하여 외씨번선길이라 부른다. 외씨버선길에는 각 군마다. 객주들이 조성되어 있어 걷는 도반들에게 4색 15길(246km)의 길잡이를 한다고 설명이다. 객주는 청송 출신 소설가 김주영의 객주에서 따온 명칭이다.

김삿갓유적지에서 마대산으로 가는 길 입구(사진=김호선기자)
김삿갓유적지에서 마대산으로 가는 길 입구(사진=김호선기자)

영월을 지붕없는 박물관이라 한다. 김삿갓면에만 8개의 박물관이 있다. 난고의 발자취를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계곡길에는 조선민화박물관과 묵산미술박물관 등이 있다. 고즈넉하고 여유로움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최적의 길이다. 1998년부터 매년 10월에 열리는 김삿갓문화재는 그 어떤 축제보다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은 축제다. 연중 외씨버선길에서는 사시사철 걷기 행사가 열리는 길이다. 길위를 걷는 도반들은 한번쯤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자연과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쉼과 힐링의 여유가 있는 외씨버선길, 그 매력느끼고자 한다. 

도반들이 걷고 싶어 하는 외씨버선길 안내도(사진=김호선기자)
도반들이 걷고 싶어 하는 외씨버선길 안내도(사진=김호선기자)

난고 김삿갓의 시에는 당시 서민들의 해학과 풍자가 담겨 있다고 한다. 영월 백일장에서 조부 김익순을 비난하는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 죄통우천(가산 군수 정시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우러러 논하고 하늘에 닿은 김익순의 죄를 탄하다)이라는 시다. 또한 ’입금강산‘이라는 시 내용은 ‘책 읽느라 백발되고 출세길 다 늙었으니 천지는 다함이 없고 사람이 품은 한은 길도다. 장안의 붉은 소주 열 말을 실컷 마시고 가을 바람에 도룡이 삿갓쓰고 금강산에 들어가다’. 한편의 시 내용에 빠져 보지만 이해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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