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사진 = 위키미디어)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 (사진 = 위키미디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을 바라보면 두 개의 시간이 동시에 흐른다. 화면의 윗부분에는 밝고 잔잔한 하늘이 펼쳐지지만 그 아래에는 가로등이 켜진 깊은 밤의 거리 풍경이 놓여 있다. 낮과 밤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이 기묘한 조합은 초현실주의 회화 중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다. 말이 되지 않는데도 묘하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빛의 제국〉은 마그리트가 평생 반복해 그린 대표 연작으로 알려져 있다. 마그리트는 시각적 모순과 사고의 균열을 통해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보이게 만드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이 그림의 핵심은 낮과 밤이라는 시간의 부딪힘이 아니라 둘이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물린다는 점이다. 하늘은 낮의 색을 하고 있지만 거리는 분명 밤의 정적을 담고 있다. 그런데 둘 중 어느 것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그리트는 현실의 불가능성을 마치 당연한 사실처럼 제시하며 관람자로 하여금 눈앞의 세계를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최근 이 작품이 다시 화제가 된 이유는 경매 시장에서 보여준 영향력 때문이다. 2024년 11월 19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그림은 무려 1억 2천 백만 달러 이상(약 1억 2,116만 달러)에 낙찰되며 마그리트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이 거액은 단순한 가격이 아니라 초현실주의가 현대 미술시장에서 갖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작품이 가진 상징성과 더불어 작가 마그리트의 삶도 매우 흥미롭다. 그는 평생 일상의 사물을 낯설게 바꾸는 방식으로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 사이의 틈을 파고들었다. 그는 “파이프는 파이가 아니다”라는 문구로 알려졌는데, 이처럼 제목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즐겼다. 〈빛의 제국〉 역시 낮의 하늘 아래 밤의 정적을 배치함으로써 관람자에게 세계가 가진 두 얼굴을 동시에 마주보게 만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이 시리즈가 여러 버전으로 반복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마그리트는 1940~60년대에 걸쳐 ‘빛의 제국’이라는 주제로 최소 17개의 유화와 여러 고아슈(수채화 겹기) 작품을 남겼다. 각 버전마다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동일한 이미지 구조를 유지하며 반복 속에서 이미지의 힘이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실험했다.

르네 마그리트 (사진 = 위키미디어)
르네 마그리트 (사진 = 위키미디어)

이 작품의 시장 가격 급등은 단지 희소성 때문만이 아니다. 마그리트가 시도한 ‘불가능한 풍경’이 오늘날 디지털 시대 시각 문화와 맞물리면서 젊은 컬렉터층과 미술시장 모두에게 새롭게 읽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낙찰된 컬렉션의 소장자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풍경화가 단지 미술관의 벽을 장식하는 것을 넘어 생활공간과 디자인 공간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빛의 제국〉은 단순한 그림을 넘어선 시각적 퍼즐이자 철학적 질문이다. 왜 우리는 낮이라고 믿는 하늘 아래 밤처럼 느끼는 순간이 있는가. 왜 익숙한 풍경이 한 문장 바뀌면 낯설어지는가. 마그리트는 그 질문을 그림으로 던졌고 현대의 감상자는 그 물음을 다양한 맥락에서 다시 만난다.

 미술을 단순히 감상하는 행위를 넘어 세계를 다시 읽는 도구로 삼고자 한다면 이 작품은 하나의 출발점이 된다. 〈빛의 제국〉 앞에서 우리는 색과 형태 너머에 있는 관념의 틈을 들여본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 자신도 우리가 사는 세계도 조금은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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