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전격 회동했다.

두 사람은 이틀 동안 8시간에 걸쳐 장시간 회담했다.

미 백악관 측은 설리번 보좌관이 왕 주임을 만나 “양국 관계, 세계적·지역적 문제들,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양안 문제 등 핵심적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중국 <신화통신>은 왕 주임과 설리번 보좌관이 “중·미 관계의 장애물을 제거하고, 관계 하강을 중단시키면서 관계를 안정화하기 위해 솔직하고 심층적이며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논의를 했다”며 “양쪽은 전략적 소통 채널을 계속 잘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고 전했다.

앞서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탈동조화’(디커플링 decoupling)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7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한 강연에서 “우리는 중국과의 분리, 탈동조화를 하자는 게 아니라 (과도한 중국 공급망 의존에 대한) 위험 해소(derisking)와 다변화(diversification)를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반도체 규제 등은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최첨단 기술 수출로 초점을 좁힌 것이라며, 중국과의 무역을 단절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미국의 대중국 무역액이 사상 최대였던 점을 지적하며 “미국은 중국과 막대한 무역, 투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0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워싱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미·중 경제 관계 주제의 강연을 하면서 “우리는 핵심 이익을 지키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중국 경제와 우리 경제를 디커플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은 “우리들 경제의 완전한 분리는 양 국가에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세계의 다른 나라들도 불안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U 주요국가들도 탈동조화를 반대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정상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익을 위한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지난달 초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같은 시기에 중국을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중국과 디커플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중순에 중국을 방문한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도 마크롱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12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럽연합 장관 회의 뒤 주제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기자들에게 유럽의 목표는 중국과의 ‘탈동조화’가 아닌 ‘위험 해소’(디리스킹)라고 강조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미국과 동맹 또는 우방 관계를 표방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탈동조화에 반대하는 외교적 노선을 취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결코 중국과 가치를 공유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그게 자기 나라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만일 대중 투자 통제와 탈동조화를 선택했다간 자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게 빤한데 뭣 하러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겠는가. 게다가 미국은 다른 동맹국에겐 ‘탈동조화’를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기 나라는 안 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정부가 나홀로 ‘탈중국’을 선언하고 대통령이 앞장서 외교 갈등을 부추기는 형국이니 한·중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는 모양새다.

거칠고 자극적인 발언으로 상대국을 자극하여 관계를 악화시키는 건 정상적인 외교가 아니며, 나아가 이런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건 중대한 국익 훼손이다.

중국과의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기업과 국민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지난 3일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1%로 제시했다.

지난해 3분기부터 기업 영업이익이 급감하고 있어 대기업의 신용등급도 ‘부정적 전망’과 ‘부정적 관찰대상’ 기업이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경상수지가 44억6000만 달러 적자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148억8000만 달러 흑자)와 비교하면 193억4000만 달러 급감했다.

5월 10일 현재 무역수지 적자는 294억 달러를 넘었다.

한때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무역 흑자국이었던 중국과의 교역은 갈수록 악화일로다.

5월 10일까지 대중 무역적자는 111억1900만 달러로 무섭게 불어나고 있다.

수출 감소와 경기침체의 영향이 고용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제조업 취업자 수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9만7000명 줄었다. 28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의 감소다.

제조업은 청년층 비중이 높고 다른 산업에 비해 노동 조건이 좋은 업종이라 제조업 일자리 감소는 고용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정부 출범 1년 만에 벌어진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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