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돌입한지 12일째가 되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적용 차종과 품목을 기존 컨테이너·시멘트 외에 대상 확대 ▲안전운임제 개악안 폐기 등을 요구하고 있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주요 항만, 컨테이너 기지, 제철소·시멘트·정유·자동차 공장 등 전국 주요 물류 거점에서 투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 주요 항만 등 곳곳에서 화물 운송에 차질이 발생하였다.

화물연대가 총파업에 돌입하자, 윤석열 정부는 사상 최초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강력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토부·행안부·법무부·고용부·해수부 장관과 경찰청장 등은 운송거부 철회 촉구 정부 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을 발표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집단운송 거부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 나가겠다. 운송거부자에 대해선 지자체와 공조해 법적 근거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화물연대가 5개월여 만에 다시 총파업에 나선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지난 6월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지속 추진하고, 적용 품목 확대 등을 논의한다’고 약속했고, 화물연대는 파업을 중단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다음날 바로 일몰제 폐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합의를 번복했고,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에 대해서도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약속은 잠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면피용 술책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회의 직무유기에도 책임이 있다.

6월 파업과 합의 이후 여야는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에서 합의 사항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지만, 관련 회의가 열린 건 9월 말 단 한차례 뿐이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의 과로·과속·과적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고 어긴 화주에게 과태료를 물리는 제도다.

지난 2020년 시멘트와 컨테이너 화물에만 일몰제로 한시 도입돼 올해 말 종료를 앞두고 있다. 안전운임제 자체가 폐지될 상황에서 큰 논란이 뻔히 예상됐음에도 국회는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은 채 사실상 수수방관해왔다.

정부는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 확대를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원희룡 장관은 “(품목 확대는) 연구용역 결과 안전개선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며 대국민 담화에서도 ‘무관용 원칙’만을 반복했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 안전운임제는 산재 예방 측면에서도 효과가 뚜렷하다. 제도 시행 후 과적과 과로, 야간운행이 모두 감소해 전반적인 노동위험지수가 뚜렷이 감소했다.

과적이 급감했다. 시멘트 품목 과적 경험은 제도 시행 전 30%에서 10% 수준으로, 컨테이너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 비율은 29%에서 1.4%로, 시멘트 12시간 이상 장시간 운행 비율은 50%에서 27%로 놀라울 만큼 감소하였다.

지난 9월 22일 열린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입법을 위한 국제사례분석 국회토론회’에서 발표된 사례를 보자.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1989년부터 지난해까지 안전운임제 도입으로 도로 안전이 개선돼 약 205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한국에서는 1200여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한국 외 안전운임제를 시행 중인 국가들은 차종·품목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는 1979년부터 안전운임제를 시작해 현재 음식배달 차량을 제외한 전 차종·품목에 적용 중이다. 브라질도 비슷한 제도를 시행 중인데, 적용대상은 일반, 벌크, 냉장, 위험 화물 등 12개 품목이다.

표준 운임을 계산할 방법이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계량이 어렵고 복잡해도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방법이 있다.

가관인 것은 여당이 안전운임제의 확대는커녕 되레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의원이 지난달 23일 발의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안전운송원가’를 산정할 때 고려할 사항에서 인건비 항목을 삭제하는 등 안전운임제를 후퇴시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운송료를 낮추기 위한 꼼수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밀어붙일 태세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은 운송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집단으로 화물운송을 거부하여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거부하면 화물운송 종사 자격이 취소되거나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정부는 화물연대가 특수고용노동자, 즉 자영업자여서 안전운임제를 적용하는 게 적절치 않고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가 화물 종사자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영업자’에게 강제로 일하라고 명령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익이 남지 않아 자영업자가 영업을 안 하겠다는데 정부가 왜 강제로 영업을 하라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업무개시명령은 노동자의 파업 무력화를 목표로 도입된 제도이며,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금지 규정에도 위배된다.

이처럼 논란이 많아서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도입 뒤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발동된 적이 없다. 화물연대는 “업무개시명령은 죄형법정주의와 강제노동금지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반헌법적인 업무개시명령 엄포를 중단하라”고 반박한다. 

정부와 여당은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강조한다.

우리 헌법 33조는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단결권(노동조합)과 단체행동권(파업)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의 파업권을 불온시하는 것은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부‧여당의 당국자들은 헌법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스스로 반헌법 세력임을 실토하는 셈이다.

 

저작권자 © 한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