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의 명소 용머리 해돋이 절경
2024 갑진년을 파란 ‘용(龍)’의 해라고 한다. 용은 십이지간 중 낙타, 사슴, 토끼, 호랑이, 뱀 등 여러 동물을 합성한 상상 속의 동물이다. 용을 순수한 우리말로는 ‘미르’라 부르며 외국에서는 드래곤(dragon)이라 한다. 용의 해를 맞아 새해 해돋이를 용의 지명이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용 관련 지명에는 용산, 용천, 용두암 등 전국에 무려 1,261개가 있다고 한다.
용은 우리 민족의 토속신앙에 신성한 동물로 여겨왔다. 용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명소 중 다시 가고픈 연화도에서 해맞이를 했다. 한국의 나폴리라는 경남 통영항에서 24km 떨어진 욕지면에 속한 연화리 용머리다. 몇 해 전 다녀온 연화도는 연화항에서 동머리까지 약 3km의 작은 섬이다. 통영 앞바다에는 전라남도 1004의 섬 신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섬이 있다. 욕지도, 한산도, 비진도, 추도 등 526개의 섬 중에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44개라고 한다.
연화도(蓮花島)는 많은 전설을 안고 있는 섬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연꽃을 의미하는데 ‘바다에 핀 연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섬 중에 사람이 가장 먼저 정착한 섬이 연화도라고 한다. 연화도는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배(1시간)를 타고 들어간다. 통영에서 연화도를 들어가는 배편은 통영여객터미널, 삼덕항, 중화항 세 곳에서 있다. 그 중에 중화선착장에서 욕지도欲知道를 거쳐 연화도로 가는 배편을 선택했다. 배의 운행시간도 30분이 더 소요된다.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떠나는 사람과 차량들로 도로는 정체현상이다. 12월의 마지막 날 무슨 미련이 아쉬움이 남는지 새벽녘부터 비가 내리고 때론 눈이 내리는 짓궂은 날씨다. 두툼한 옷차림에 우산을 들고 일행 등은 모여든다. 짧지만 2년을 함께 보내야 할 일행들이다. 반갑다 서로 나누는 정담이 인사말이 재미있다. 떠나는 해맞이객들은 우연히 마주친 눈을 마주치며 서로를 격려하고 한해를 축하하는 표정이 밝다.
집을 나선지 5시간을 달려 통영 중화선착장에 도착했다. 대형버스 몇 대가 서 있다. 중화항선착장은 따뜻한 봄날을 연상케 하는 포근한 날씨다. 입고 내려왔던 두툼한 외투들을 벗는다. 인천과 기온 차이가 5도가 넘는다. 바닷바람이 칼바람처럼 불지만 춥지가 않다. 매섭게 부는 바람으로 높은 파고가 일렁거린다. 평소 같으면 배가 운항하지 못할 날씨이지만 많은 사람의 사전예약으로 배가 출항한단다. 다행히 아닐 수 없다. 멀리 약을 챙기는 분들이 보인다.
배는 지정된 시간에 출항했다. 항구를 떠나는 선상에서 중화마을 모습을 바라보는데 무척이나 아름다운 작은 포구다. 항구를 벗어나 큰 바다로 나선다. 배의 모습이 일엽편주가 같은 느낌이다. 대부분 사람은 선실로 들어가는데 선실은 대만원으로 비좁다. 비좁은 선실에서 앉거나 눕는다. 멀미하는 사람들은 선실 밖으로 나가는데 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뱃전에 파도가 치고 올라와 바닷물에 옷을 젖기도 한다. 파도가 뱃전을 때리는 소리가 쿵쿵거린다. 배는 1시간여 거친 파도를 헤치고 천혜의 욕지항구로 접어든다. 뱃고동 소리가 정겹다.
욕지도는 설렘의 섬으로 옛 기억을 더듬어 본다. 뱃전에서 천왕산394m 등을 바라보는 산하는 그대로인데 마을 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천혜의 항구 입구에는 고등어 등 가두리 양식장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욕지도는 통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으로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섬이다. 바닷가 해변의 산에는 후박나무 등이 무성하다. 욕지도에 하선은 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꼭 가보고 싶은 섬인데 다음을 기약한다. 오래전 업무차 욕지도, 두미도 등 통영 앞바다 유인도 대부분을 다녔던 추억이 있다.
욕지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체 여객선은 연화도로 향한다. 30분 거리이다. 지나치는 무인도들이 푸른 바닷물과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놓고 있다. 연화도 연화봉215m이 보이고 해돋이를 할 용바위의 경이로운 바위 군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연화도와 우도를 연결한 하얀 다리의 모습이 연화도에 입도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연화도 포구는 매우 잔잔하다. 섬들을 다니다 보면 빨간 등대가 있는데 여기도 빨간 등대가 뱃길을 안내한다. 연화도에 도착하자 수백 명의 관광객이 하선한다.
일행들도 하선하여 여장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연화도 주변을 걷는다. 연화봉 고갯마루에 올라 연화도와 주변 섬들을 조망하는데 아름답다는 말 이외는 그 어떤 수식어가 필요 없다. 공기는 깨끗하고 청량감이 있어 시원하다. 상큼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켠다. 여름의 모습과는 또 다른 느낌의 연화도다. 내일 새벽 해돋이를 할 용바위를 본 일행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런 비경이 있었다니 극찬이다. 해가 저물어 해넘이를 보기 위해 산 정상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황혼빛으로 물든 용바위로 대신한다.
연화도에서 먹은 밥맛이 맛자랑을 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있다. 식단은 소찬이지만 그릇에 담겨 있는 맛은 맛깔스럽다. 밤이 되니 복잡한 도심지의 밤거리와는 다르다. 청명한 밤하늘에 수놓은 은하수는 천상의 세계다. 탄성을 부르짖게 한다. 경이롭고 신비스러운 밤이다. 어두컴컴한 밤이지만 밤하늘의 은하수와 반달이 그림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연화도에 작은 절이 있는데 이곳에서 재 등(초) 행렬이 있어 참석했다. 코스는 연화사를 출발하여 고갯마루에 있는 보덕암까지다. 2023년 마지막 밤을 연화도에서 또 다른 추억을 남겼다.
새벽녘 새날이 밝아온다. 2024년 푸른 용의 해의 첫 여명이 밝아온다. 찬란하게 영롱하게 조용하게 남해 수평선 위로 떠 오른다. 바다도 어제와는 다르게 파도가 없는 조용한 바다다. 어부들의 배가 둥둥 떠 있다. 새해 아침 보덕암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용머리의 모습이 신비스럽다. 새해맞이 떡국을 먹고 암자 마당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 맛도 여정의 피로를 씻게 한다.
2024년 첫 해는 용머리 위로 떠 오른다. 한겨울의 새벽인데도 남해는 춥지가 않다. 포근한 기온 때문에 동해안에서 보는 일출보다는 훨씬 따듯하게 해맞이를 할 수 있다. 앞으로 매년 해돋이는 복잡하지도 않고 따듯한 남해다. 바다 수평선 위로 붉은색이 물감을 들인다. 바다 끝에 검은 먹구름 띠가 보인다. 아쉬운 해돋이가 될 것 같다. 예상된 일출이 7; 35분인데 정작 첫해는 10여 분 늦게 떠올랐다. 매일 떠오르는 햇살이지만 뭉클하다.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 해맞이를 하는 것이다. 모두가 두 손을 모으고 소원들을 비는 모습이 정겹다.
연화도 보덕암에서 맞이한 갑진년 해맞이 장관이다. 어느 때 보는 해돋이와는 다른 느낌의 해돋이였다. 2024년 무엇보다 건강을 빌면서 배려와 존중으로 소외된 이웃들을 살피는 그런 한해를 기원한다. 보덕암에 수십 그루의 얘기 동백이 피었는데 그 향기가 진하다.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동백 향이 그윽하다. 마치 새해를 축하하는 향기처럼 느꼈다. 2024년 청용의 기를 가슴에 안고 돌아오는 한려수도의 바다는 잔잔하다.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며 푸른 용을 찬란하게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