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참사가 연일 전해진다.

축제와 파티의 현장이 삽시간에 살인과 도륙의 장으로 바뀐다.

비명과 절규, 유혈이 낭자하다.

군사분계지역은 생지옥이다.

대한민국은 전 국토가 군사분계지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는 '생명의 보우하사' 외에 물질적 가치는 처참히 파괴되고 그 우월적 가치를 상실한다.

무기를 든 자, 식량을 차지한 자가 곧 짐이다.

이-팔 전쟁에서 살육의 테제는 무엇이었을까.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억압'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의 테제로 삼았다.

이슬람 민중에 대한 억압과 핍박, 이에 대한 자유, 곧 해방에 대한 부르짖음이 적대적 군사분계지역에서 맨 먼저 터져나왔다는 설명이다.

미 하버드대 팔레스타인연대그룹이 이를 지지했다고 매체 폴리티고가 전했다.

하버드대 35개 학생단체가 동의한 성명에는 '지난 20년간 가자지구 수백만 팔레스타인인들을 야외 감옥에서 살도록 강요하고 75년간 폭력을 구조화했다'고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전쟁을 시작했을 때도 '핍박받는 러시아계 민족에 대한 해방전'을 내세웠다.

전쟁에 대한 시각은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를 옹호하는 쪽만 있는게 아니다.

대만과 북한, 그리고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해도 자국에 대한 타국의 탄압과 억압, 핍박과 제재, 이에 대한 경제・사회・정치적 자유와 해방에 의의를 둔 주석이 가장 먼저 달릴 것이다.

북한도 제국주의 세력이 자신들을 억압한다고 하고, 남한도 공산주의 세력이 자유를 탄압해 뺏어간다고 100년에 걸쳐 생각하고 있다.

자유라는 게 자유민주주의 국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의미다.

12・12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미국의 묵인 아래 5・18 광주시민을 반체제 세력으로 몰아 무참히 짓밟았다.

전체주의 국가들도 자립, 자강, 자유의 확장을 내세워 쿠데타와 전쟁 수행에 열을 올렸다.

파시즘을 영웅화했다.

그 결과, 양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인류는 파멸과 고통에 신음했다.

그런 측면에서, 목숨을 내놓는 전쟁 수행까지 고려한다면, 현대 미국의 탄생 배경에서도 드러났듯이, 자유에의 추구는 종교적・경제적・민족적 측면에서 지구상 모든 국가와 민족, 개인이 추구하는 최상의 가치, 혹은 뺏길 수 없는 절대적 가치가 맞아 보이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이래 줄곧 외쳤던 '자유, 자유, 자유'를 이 시점에서 떠올리는 이유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연설마다 '자유'를 역설했다.

취임사에서 자유가 35번 불려졌고, 8・15 경축사에서 33번, 방미 때 157번 등 크고 작은 연설과 담화를 통해 500번 가까이 자유를 부르짖었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은 이 '자유'에 대해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일반 국민은 윤 대통령의 자유에 대해 대체로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한다.

막연하게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프리덤(freedom)' 정도를 떠올리며 '현재 자유가 있는데 대통령은 왜 자꾸 자유를 강조하는지' 고개만 저을 뿐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수치'만 봐도 고개는 갸우뚱해진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내놓은 2022년 Democracy Index(민주주의 지수)는 미국이 2021년보다 4단계 내려간 30위, 한국은 같은 기간 8단계 하락한 24위를 기록했다.

스웨덴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의 자료에도 2021년 말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지수(LDI)'는 0.79, 2022년 말에는 0.73으로 0.06p나 더 떨어졌다.

대통령은 날마다 자유를 강조하고 자유의 확대를 주창하지만 대한민국의 실상은 '통계적'으로는 달랐다.

통계 뿐 아니라 '같은 편'으로 분류되는 보수언론의 시각도 그랬다.

2023년 10월 13일 양대 레거시 보수언론은 사설을 통해 윤 대통령을 촌철살인했다.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에 대한 일갈이었다.

동아일보는 '변화와 쇄신은 윤 대통령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 스스로 인식과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1년 넘도록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불통, 곳곳에 내 사람을 심어 국정을 주도하겠다는 오만, 직접 이념전쟁의 전사로 뛰어드는 독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취임 1년 5개월이 지난 윤 대통령을 불통, 오만, 독선적이라고 규정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도 대통령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의식하지 않다 보니 민심과 괴리가 생기고 이 간극이 자꾸 더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매사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을 준다. 여당의 강서구청장 후보 선정도 주위 시선을 일절 무시하고 밀어붙였다. 정치에선 취임 이후 지금까지 누구를 내치고 배척하는 기류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지나친 상하 관계가 되면 꼭 필요한 정치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지금이 그런 상태다. 지나친 상하 관계가 되다 보니 지금 국민 눈에 여당은 보이지도 않고 있다.'고 썼다.

윤 대통령이 타인의 시선과 생각을 의식하지 않고 매사에 일방적으로 밀어 붙이며 대통령실과 여당의 관계를 '지나친 상하 관계'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자유롭지 않고 권위적이라는 말이다.

대통령은 자유를 그토록 외쳤겄만 돌아온 평가는 일방적・독선적・상하 관계적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봤을 법한 특징들이 열거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에 분노하고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지 않은 다수에 의한 반지성주의'를 혁파하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고 했다.

대통령의 '자유'는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제출된 '본인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밀턴 프리드먼 부부의 「선택할 자유」'를 뜻한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선택할 자유」에는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말한 "정부의 주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해요소를 제거해 나가는 것"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프리드먼은 사기업의 자율적 경제활동을 강조하며 규제 혁파, 낮은 세금, 경제활동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 작은 정부 등을 시장 번영의 전제로 봤다. 신자유주의 이론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또 자유시장의 번영을 통한 빈곤의 퇴치, 세금을 통한 공적 혜택의 최소화 즉 반(反) 복지 포퓰리즘,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 공정한 능력주의 등을 추구했다.

특히 과학과 통계에 기반하지 않은 반지성(무지・선전선동)적 민주주의가 과해지면 과학과 진리에 기반한 엘리트 시민의 미덕이 훼손된다는 논리를 따랐는데 윤 대통령도 이에 충실한 것으로 보인다.

종합하면 윤 대통령에게 있어 자유는 민주와 평등에 앞서는 개념이면서 자본주의 시장 번영의 원천이자 근본인 셈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 본인에 대한 앞선 평가가 그렇듯 자유를 추구하는 국가들의 현실도 이론과 사뭇 다르다.

자유민주주의의 대부(代父) 미국의 강력한 보호무역과 대중러 보복무역은 전 세계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교역을 옥죄고 있다. 

미국이 컨트롤하는 반도체 시장과 전기차 시장에서 우리의 기업은 다만 '을(乙)'을 뿐이다.

한미일이 '자유'라는 가치동맹을 강화할 수록 우리 기업들은 신냉전체제 속에 전전긍긍하며 공급망 불안과 엄청난 불확실성 앞에서 초유의 비상경영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습니다'라는 윤 대통령과 프리드먼의 주장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매일 벌어지는 국지전의 발발과 쿠데타, 정치적 극단주의의 팽배는 자유시장주의 국가를 '더 큰 정부',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 정부, 괴물 정부'로 만들고 있다.

대화와 타협, 정치・외교적 '중립'을 외면하고 동맹을 앞세워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을 초래하는 권력이야 말로 역사상 가장 심각한 반지성주의 정부다.

폭력과 살인은 누가 뭐래도 반지성주의의 끝이다.

우리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신적 스승은 한반도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를 봤을 때 '윤석열 정부의 가치동맹은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전시 상황을 앞둔 한반도에서 윤 대통령의 자유가 어떤 식의 자유, 누구를 위한 자유, 무엇을 향한 자유인가를 남은 임기 중에 더 논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내 자유', '내 조직의 자유', '내 국가의 자유', '내 동맹만의 자유'만 진정한 자유고 나머지 자유는 인정하지 않거나, 반지성주의로 몰거나, 가짜로 규정하는 것은 완고하고 편협한 태도다. 

역사의 흐름을 망각한 '자유', 세계사의 통합적 성찰이 없는 '자유',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자유', 미래세대를 담보하지 않은 '자유'의 실행은 심각한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조선일보는 위 사설에서 '국민은 선거로 의사 표시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이 이에 응답하지 않으면 완전히 등을 돌린다.'고 윤 정부에 경고했다.

동아일보는 '민심은 때론 변덕스럽지만 어떤 위정자도 그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남 탓 아닌 내 탓,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통령에 직언했다.

보수언론도 이제 이렇게까지 말하는 지경이다.

'한 달이면 적들을 완전히 초토화 할 수 있다', '우리가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소수의 극단주의자와 행동파들이 전쟁을 일으켜왔다.

그러나 전쟁은 1개월 내에 끝나지도 않았고 군사적으로 압도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했다.

이 시대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추구하는 중도진영의 행동이 절실하다.

군국주의적 자유동맹에 믿고 맡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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