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와 소악루를 품은 '궁산역사유적순례길'

서울 가양동에 허준박물관이 있으며  구암공원에 세워져 있는 허준선생 동상(사진=김호선기자)
서울 가양동에 허준박물관이 있으며 구암공원에 세워져 있는 허준선생 동상(사진=김호선기자)

역사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했다. 서울 양천의 이런 역사유적과 유물이 있다니 감동이다. 서울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 문화를 체험하면서 걸을 수 있는 유적순례길이 있다. 서울둘레길은 총 21개의 전철역을 이용하여 편리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그중에 서울둘레길 6코스(가양역-석수역)를 답사하고자 가양역으로 가던 중 허준박물관과 양천향교 등이 보였다. 놀라운 마음에 6코스는 다음으로 미루고 유적순례길을 찾았다. 강서에 옛 양천의 이런 유물과 유적이 있다니 걷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혜다. 

양천 허씨 시조가 태어나고 허준선생이 동의보감을 집대성 했다는 허가(공암)바위(사진=김호선기자)
양천 허씨 시조가 태어나고 허준선생이 동의보감을 집대성 했다는 허가(공암)바위(사진=김호선기자)

서울지하철 9호선 가양역을 지나 양천향교역에서 내려 허준박물관이 있는 허준테마거리로 갔다. 2005년 허준박물관(3층)은 개장했다. 이번 답사는 허준박물관- 양천향교- 소악루- 양천고성지- 궁산땅굴- 겸재정선미술관-서울식물원 순이다. 구암 ‘허준선생(1539~1615)’은 조선 중기 의학자다. 동의보감으로 저술하고 허준 드라마를 통해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이다. 허준은 강서구 등촌동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조선 태종 때 건립했다는 서울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천향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조선 태종 때 건립했다는 서울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천향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1575년 허준은 선조의 어의로 임명되어 1590년에는 광해군의 두창을 치료하여 당상관까지 올랐다고 한다. 1610년에 동의보감(25권) 편찬을 완료했다. 박물관 뒤편에는 구암그린공원(허준공원)이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다. 이 공원에는 허준선생의 동상이 있는데 선생이 앉아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이다. 동상 옆에 새겨진 ‘더 좋은 나를 위해 더 좋은 날을 위해’ 라는 글귀가 정감이 간다. 공원에는 전설 같은 광주바위와 서울시기념물 제11호 공암(孔巖)바위(허가바위 양천허씨 시조)가 있다. 기록의 의하면 허준선생은 허가바위에서 동의보감을 집대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강하구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을 수 있는 소악루 모습(사진=김호선기자)
한강하구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을 수 있는 소악루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옛 공암나루터에서 한강변으로 올림픽대로가 있고 한강변에는 한강 풍경을 즐기며 국토종주를 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와 보행자 길이 조성되어 있다. 강건너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방화대교 등이 보인다. 아름다운 한강변이다. 1km 거리에 양천향교(서울 문화재기념물 제8호)가 있는 궁산(75m)이 있다. 궁산은 마을 뒷산으로 한강변의 있는 넓지도 높지도 않는 산이다. 궁산에는 양천향교, 양천고성지, 소악루, 궁산땅굴, 겸재정선미술관 등이 있다.

당시 풍류객들이 즐겨 찾았다는 소악루에서 본 아름다운 한강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당시 풍류객들이 즐겨 찾았다는 소악루에서 본 아름다운 한강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궁산역사유적순례길을 따라 홍원사를 지나 양천향교에 도착했다. 전국에는 234개의 향교 중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다. 조선 태종 11년(1411)에 만들어진 교육기관으로 고풍스런 매력을 지니고 있다. 향교에는 대성전(5현 위패 봉안), 전사청(제수준비 하는 곳), 내삼문(출입문 입구는 동쪽, 출구는 서쪽), 명륜당(30명 교육받던 곳), 동, 서재(유생들 숙소), 외삼문(출입문)과 홍살문(충신, 효자, 열녀 등을 포창하고 임금이 마을이나 집에 세운 붉은 문) 등이 있다. 양천향교도 갑오개혁(1894)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교육기관의 기능이 상실된 향교다. 매년 2월, 8월에 석전대제가 열린다.

한강하류 파수군처럼 한강을 굽어 보는 유적의 보고 궁산 정상 모습(사진=김호선기자)
한강하류 파수군처럼 한강을 굽어 보는 유적의 보고 궁산 정상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양천향교 뒤 담벼락을 따라 궁산을 올라간다. 궁산둘레길(약 2km)은 걷기 좋은 숲길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둘레길은 산책하기 좋은 길로 역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길이다. 궁산에는 삼국시대 축조한 양천고성지(터)가 있다. 고성지 입구에서 아름다운 한강 경치를 바라보기 좋은 곳에 소악루라는 정자가 있다. 소악루는 조선 영조(1737) 전라도 동북현감을 지낸 이유(1675-1753)가 세운 정자라 한다. 소악루는 중국의 동호정의 악양루를 본 따 지었다고 한다.

낮은 산의 왠 땅굴! 놀라운 모습이지만 슬픈 역사의 현장 땅굴 입구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낮은 산의 왠 땅굴! 놀라운 모습이지만 슬픈 역사의 현장 땅굴 입구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소악루에서 내려다 본 한강의 모습은 경이롭게 아름답다. 드넓은 한강 줄기가 끝없이 흘러가는 강이다. 안산, 인왕산, 북악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악루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선생 등 수많은 명사 묵객들이 즐겨 찾은 누각이라 한다. 겸재 선생은 이곳 현령을 있을 적에 그린 경교명습첩에서 당시의 화려한 경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당시의 아름다운 산천은 볼 수 없어 아쉽지만 그래도 발걸음이 멈추어지는 풍광이다. 소악루에는 겸재 정선의 목면조돈과 안현석봉을 설명해 놓았다.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이 굴착하다 패망으로 중단되어 있는 궁산 땅굴 내부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일본 강점기 때 일본이 굴착하다 패망으로 중단되어 있는 궁산 땅굴 내부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소악루에서 양천고성지로 오르는 길목에 작은 집이 있다. 위패를 모셨다는 성황사다. 성황사에 모신 신은 도당할머니로 여신이라고 한다. 이 여신은 산 아래 백성들의 번영과 행복을 이루도록 도와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여러 악귀를 몰아내어 각종 돌림병과 재앙들을 막았다고 한다. 백성들은 매년 10월 초하룻날 산신제를 올렸다는 성황사다.  

땅굴 앞에 조성된 겸재정선미술관 전경(사진=김호선기자)
땅굴 앞에 조성된 겸재정선미술관 전경(사진=김호선기자)

궁산 정상에는 양천고성지(사적 제372호)가 있다. 옛 양천산성의 길이는 218m였다고 한다. 돌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흙으로 쌓은 토석혼축성이라한다. 고증에 의하면 이 고성은 통일신라시대 때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양천고성지가 있던 산 정상은 넓은 잔디밭이다. 울창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원형 모습이다. 정상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면 왼쪽으로 행주산성(5km)이 있으며 방화대교와 마곡대교가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가양대교와 강건너 노을공원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겸재정선미술관에서는 필묵 전시회로 많은 관람객으로 붐비는 미술관(산진=김호선기자)
겸재정선미술관에서는 필묵 전시회로 많은 관람객으로 붐비는 미술관(산진=김호선기자)

임진왜란 당시 ‘권율(1537~1599)’장군이 양천산성에 진을 치고 전쟁의 판세를 가늠했다고 한다. 장군은 행주산성으로 군대를 이동시킨 후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것이다. 예부터 양천산성은 행주산성, 오두산성과 더불어 한강 하구로 침입하는 적을 관찰하고 방어하는 군사요충지였다고 한다. 양천고성지에서 둘레길을 따라 내려오면 궁산땅굴전시관이 있다. 서울에 왠 땅굴인가? 궁금하고 놀래지 않을 수 없다.

겸재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겸재선생의 인왕산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겸재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겸재선생의 인왕산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삼국시대부터 한강은 육로와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군사거점 지역이었다 한다. 일제는 1940년대 인근 주민들을 보국대로 강제동원하여 땅굴을 뚫었다고 한다. 각종 무기와 탄약 등 군수물자를 저장하고 미군의 공습시에는 지하부대로 사용하기 위한 땅굴이라 한다. 규모는 객차가 다닐 정도의 큰 땅굴(길이68m, 폭2.2m 넓이 2.7m)이다. 땅굴 공사가 진행되던 중 일제의 패망으로 둥단된 땅굴이라고 한다. 궁산땅굴에서 김포비행장까지 거리는 5km 정도다. 일제는 1937년 선유봉(도)을 폭파해 나온 돌로 김포비행장을 조성하고 가미카제 특공대의 훈련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김포평야의 수리조합에서 운영하였다는 배수펌프장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일제강점기 때 김포평야의 수리조합에서 운영하였다는 배수펌프장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아픈 기억 속의 흔적 궁산땅굴전시관은 2008년 주민의 제보로 발견하고 전시관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보수공사 중 터널 일부에서 낙석이 떨어져 현재는 출입이 금지된 땅굴이다. 궁산땅굴은 역사성과 문화적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궁산땅굴 해설사로부터 궁산이 안고 있는 많은 역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궁금하였던 많은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강서 마곡지구에 조성되어 있는 서울식물원의 호수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강서 마곡지구에 조성되어 있는 서울식물원의 호수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궁산땅굴 밑에 겸재 ‘정선’미술관(지하 1층 지상 3층)이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일생일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겸재는 서울 종로 북악산 아래 청운동에서 태어났다. 1740년부터 5년 동안 양천(가양)현령을 지냈다고 한다. 옛날 양천을 지나는 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탁 트인 전망이 좋아 당시 문인들이 가장 유람하고 싶은 최고 명소로 꼽혔다고 한다. 겸재는 양천에서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첩 등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진경산수화는 겸재가 직접 체험한 아름다운 산천을 그린 독창적인 화풍이었다고 한다.

도심 공원이자 생태원으로 조성된 서울식물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도심 공원이자 생태원으로 조성된 서울식물원 모습(사진=김호선기자)

2009년 겸재 선생의 업적으로 기리고 진경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이곳에 미술관을 개관했다고 한다. 미술관 답사시 '필묵畢墨'이라는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필묵은 단순한 예술의 가치를 넘어 그 자체로 예술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미술에 관해 문외한이지만 선생의 수많은 작품을 보고 있노라니 하나라도 더 자세히 보고 싶어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선생의 작품은 북악산과 인왕산 등 풍광을 더욱 아름다운 자태가 눈을 뜨개한다.

양천향교역 부근에 조성된 작은 2.8공원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양천향교역 부근에 조성된 작은 2.8공원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미술관 밑에는 마곡지구로 커다란 공원이 있다. 2019년에 개장한 서울식물원이다. 식물원은 축구장 70배의 넓은 면적이라 한다. 식물원은 공원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공간(보타닉파크)이라고 한다. 지속가능한 녹색도시 서울의 미래상이라고 한다. 식물원 크게 4개(열린숲, 호수원, 습지원, 주제원)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관리하는 식물원이다.

궁산역사유적순례길 안내도(사진=김호선기자)
궁산역사유적순례길 안내도(사진=김호선기자)

식물원과 습지생태공원 등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공원 한가운데 커다란 건물이 있다. 근대문화유산인 구 양천수리조합배수펌프장(국가등록문화재 제363호)이다. 건물은 보기에도 매우 튼튼하게 보인다. 1920년대 김포평야 등 산미증식을 위하여 일제가 만들어 놓은 수탈의 현장이다. 현재는 마곡문화관으로 사용 중이다. 지하철을 타러 나가는데 ‘일문오열’비와 권농일기기념비 등이 있는 작은 공원이 보인다. 일명 2.8공원이다.

유일하게 향교 이름을 이용하고 서울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유일하게 향교 이름을 이용하고 서울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모습(사진=김호선기자)

강서 염창동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로 1919년 2.8 독립선언을 주도했다. 광복 후에는 초대 재무부장관을 지낸 상산 ‘김도연’박사를 기리는 공원으로 2020년에 조성했다. 2.8 독립선언서에는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조선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 일부 내용이다. 궁산을 중심으로 양천(현 강서)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을 알게 된 소중한 답사였다. 허준박물관에서는 3.22일부터 9월 29일까지 '동의보감! 조선에서 세계로'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열리는데 궁금하다. 

저작권자 © 한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