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섶길에서 '삼봉정도전'과 '원균'을 만나다.

수도권 지하철 1호선 평택 진위역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수도권 지하철 1호선 평택 진위역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섶'이란 무엇인가? 두루마기나 저고리 앞의 겹치는 부분을 말한다. 자료에 따르면 저고리 앞부분이 아래로 가는 것은 안섶, 위로 오는 것을 겉섶이라 한다. ? 한복 섶을 이야기하는가?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에 가면 섶길이라는 이쁜 이름으로 걷기 좋은 길이 조성되어 있다. 섶길은 총 16개의 코스에 구간마다 자연과 역사, 문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평택둘레길로 총 200km.

평택 섶길 10코스의 들머리 진위행정복지센터 전경(사진=김호선기자)
평택 섶길 10코스의 들머리 진위행정복지센터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걷는 것은 설렘의 행복이다. 섶길에는 명상길, 원효길, 소금뱃길, 정도전길, 원균길 등의 이름을 가 걷고 싶은 길이다. 그중에 정도전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내내 ? 여기에 정도전길을 조성하였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정도전길 끝에는 원균 묘가 있다. 길에 대한 궁금한 것이 있어 연 2회에 걸쳐 걸었다.

명당 중의 명당터에 자리잡고 있는 진위향교 홍살문(사진=김호선기자)
명당 중의 명당터에 자리잡고 있는 진위향교 홍살문(사진=김호선기자)

정도전길은 '진위행정복지센터'를 들머리로 명당 중에 명당으로 소문난 진위향교를 지나 들판을 야산을 작은 마을을 걷는 호젓한 숲길이다. 섶길 곳곳에는 숨어있는 자연경관이 . ‘진위향교뒤에는 무봉산(209m)이 병풍처럼 막아주고 앞으로는 물이 흐른다.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다. 향교 앞에는 진위천이 흐른다. 배산면수이다 

진위향교에서 내려다 보는 진위천 주변 들녘(사진=김호선기자)
진위향교에서 내려다 보는 진위천 주변 들녘(사진=김호선기자)

진위향교 홍살문을 들어서면 경사지에 짙푸른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진위향교는 조선 초기에 창건했다고 한다. 300년된 보호수가 짙은 나무 향기를 느끼게 하는 고즈넉한 분위기이다. 회화나무는 학자와 선비의 기개를 상징한다고 한다. 공자(孔子) 등 성현들을 모신 대성전(경기도문화재자료 제40)과 강학으로 사용되었다는 명륜당, , 서재 등이 있다. 향교는 각종 체험행사를 실시하는데 비가 내리는 날 외국인 100여 명이 향교 체험을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 한다.  

진위천을 가로 질러 만들어 놓은 진위천다리(사진=김호선기자)
진위천을 가로 질러 만들어 놓은 진위천다리(사진=김호선기자)

진위향교 아래로 펼쳐진 진위 들녘진위천을 건너 마산리막걸리주막집이 발걸음을 잡니다. 농노 길에 평택의 나루터 이야기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평택지역은 예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한다. 고려시대 이후 안성천의 대표적인 포구인 안성천의 군문포는 경기도 진위현과 충청도 평택현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한다. 신왕리 신왕나루와 토진포, 웅포, 신포 등이 평택의 대표적인 나루터라고 삼남길을 해설자의 설명이다.

올망졸망한 수련이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 진위천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올망졸망한 수련이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 진위천 전경(사진=김호선기자)

넓은 농노길은 정도전길과 삼남길이 겹쳐져 있다.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커다란 보호수 느티나무(250) 한그루가 위엄있게 서 있다. 그늘막이 좋은 정자 쉼터다. 직진하면 삼남길이요 정도전길은 좌측에 나있는 산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산불감시탑에서 하산 작은 마을로 하산 마을 골목길을 따라 삼봉기념관까지 걷는 길이다.

삼봉사당 문헌사로 들어가는 입구 홍살문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삼봉사당 문헌사로 들어가는 입구 홍살문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삼봉정도전三峰鄭道傳(1342~1398)”은 고려말과 조선 초기의 유학자이자 혁명가였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설계하고 조선의 기틀을 다졌다. 삼봉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이며 본관은 봉화奉化다. 삼봉선생은 죽임을 당한 후 모든 훈장이 삭탈削奪 되었다가 고종 2(1865) 대원군에 의해 복권되었다 한다. 은산리에 있는 사당에는 선생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져 있다. 사봉기념관이 있는 이곳 은산리 신대마을 일대는 삼봉의 장손 정래가 용인현감을 지낸 후 600여년간 봉화정씨가 거주하고 있는 집성촌이라 한다

삼봉사당 내에 있는 삼봉기념관으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사진=김호선기자)
삼봉사당 내에 있는 삼봉기념관으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사진=김호선기자)

정도전길을 걸으며 조선을 건국한 공신을 만나고 삼봉을 주제로 방영되였던 각종 드라마를 기억해본다. 삼봉은 백성이 곧 국가의 근본이라 했다. 백성이 군주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상이다. 정도전사당(향토유적 제2)이 있는 은산리에는 선생의 원대한 정치철학과 삶의 신념이 담긴 삼봉집목판이 있다. 선생을 모신 문헌사는 높은 계단 위에 있다. 기념관 외에도 희절사, 교육관, 문학관, 유종공종이 있다. 기념관 건너편 산에는 선생의 가묘가 있다.

삼봉정도전의 영전이 봉안되어 있는 향토문화재 정도전사당 문헌사(사진=김호선기자)
삼봉정도전의 영전이 봉안되어 있는 향토문화재 정도전사당 문헌사(사진=김호선기자)

문헌사는 문헌공 삼봉정도전을 모신 사당이다. 매년 음력 99일 평택시가 삼봉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추모제를 올리는 사당이다. 문이 잠겨져 있어 안을 볼 수 없다. 희절사는 조선개국원종공신으로 자헌대부형조판서를 역임한 희절공 정진(삼봉아들)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다. 유종공존儒宗功宗은 태조 이성계가 하사한 친필이고 지금의 편액은 고종이 하사했다 한다. 내용은 유학도 제일이고 공적도 으뜸이라는 의미라 한다.

삼봉사당에서 내려다 본 고속도로와 마을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삼봉사당에서 내려다 본 고속도로와 마을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삼봉사당에서 학창시절 역사 시간으로 되돌아 간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소개한 비가 있다. 1394(태조3)에 삼봉이 저술하여 태조에게 올린 책冊으로 나라를 경영하는 큰 원칙을 제시한 헌법에 해당한 내용이라고 설명한다경제문감經濟文鑑이라는 책을 소개하고 있다. 1395년 저술한 책으로 조선경국전 가운데 권력구조를 설명한 치전의 내용을 보완한 책이라고 소개한다. 바쁜 발걸음이지만 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덕암산 아래 내수저수지 위 위치 좋은 곳에 조성된 원균묘역 전경(사진=김호선기자)
덕암산 아래 내수저수지 위 위치 좋은 곳에 조성된 원균묘역 전경(사진=김호선기자)

삼봉사당을 둘러본 후 낮은 덕암산(163m)을 넘어 마을길을 따라 도일동에 도착한다. 여기에 원균元均(1540~1597)’의 묘(경기도기념물제57)가 있다. 원균묘 주변에는 임금이 내렸다는 교서와 제문 등이 서있다. 묘 앞에는 신도비와 문인석, 무인석, 석등 등이 있다. 원균의 사당(향토유적 제6)도 있다. 묘 앞에서 잠시 혼란이다. 서로 물어보고 논의한다. 역사에서 배웠던 사실과는 다른 느낌이기 때문이다. 선조는 원균이 사망 후 승록대부 의정부좌찬성겸 판의금부사로 중직을 내리고 사당을 세워 후손들이 제향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균의 사당 묘선제에서 바라보는 원균묘역 전경(사당=김호선기자)
원균의 사당 묘선제에서 바라보는 원균묘역 전경(사당=김호선기자)

원균의 묘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군을 통솔하는 절도사로서 크고 작은 해전을 이끌었다. 선조 30(1597) 거제 '칠천량'전투에서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권율, 이순신과 함께 1등 공신으로 임명되었으며 이 기록은 '선무공신교서(보물 제1133)'에 기록되어 있다 한다. 원균 묘 아래에는 작은 무덤 '애마총'이 있다. 원균이 칠천량전투에서 사망하자 이를 알리기 위해 천리길을  달려와 원균의 신발과 담뱃대를 놓고 죽은 말의 무덤이라 한다.

원균의 죽음을 알리고자 천리길을 달려 왔다는 말의 무덤 애마총(사진=김호선기자)
원균의 죽음을 알리고자 천리길을 달려 왔다는 말의 무덤 애마총(사진=김호선기자)

원균기념관 앞에는 이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때를 놓치면 안된다'.  한참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원균의 대한 기록은 임진왜란 초기 경상우수사였다. 당시 약간의 장병만으로 전투할 수 없어 조정과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하여 옥포, 당포 등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한다. 포상과정에서 이순신과의 공로 다툼이 심화했다 한다. 이순신이 조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서울로 국문을 당하자 1597년 이순신을 대신하여 삼도수군을 통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택 섶길 중 원균길이 시작되는 묘선제(사진=김호선기자)
평택 섶길 중 원균길이 시작되는 묘선제(사진=김호선기자)

15977월 원균은 가덕도 전투에서 패배한 후 거제 칠전량에서 피신하였다.  야간의 왜군의 기습공격으로 전투 한번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대패한 전투였다 한다. 이 전투에서 원균도 죽음을 당했다 한다. 정도전길을 걷고 난 이후 어릴 적 배워왔던 역사적 사실의 대한 혼란이다. 묘 앞에서 내려다 보는 내리저수지 등 경관이 아름다움 묘역이다. 평택섶길 정도전길에서 원균과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펴 본 의미 있는 길이였다.

 

 

 

 

 

 

 

 

 

 

 

 

저작권자 © 한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