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칭다오 대한민국 총영사관 영사로 일할 때의 일입니다.

'칭다오 백두산조선족양로원'은 2006년 5월 손옥남 설립자가 칭다오시 지머구에 인민폐 30만 위안을 투자해 '복운룡'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시작했다.

4명의 직원이 2명의 노인을 모시고 첫 스타트를 시작했지만, 현재 160여 명의 노인과 20여 명의 직원으로 발전했으며 그중 5명의 대학 졸업생과 3명의 전문가 수준의 의료진이 있다.

2010년 5월에는 200만 위안을 재투자하여 지금의 서원장에 2천 제곱미터 규모의 현대화 시스템을 갖춘 백두산 양로원으로 확장 이전했다.

손 설립자는 변함없는 마음으로 노인들을 친부모처럼 모셨을 뿐만 아니라 효성을 다해 의지할 곳 없는 140여 명에 달하는 노인들의 장례식을 직접 치러주기도 했다.

그녀는 현재도 오갈 데 없는 3명의 노인을 무료로 보살펴주고 있다.

대부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매일 손수 씻겨주어야 하지만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짜증 한번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진한 감동에 양로원 봉사를 위해 찾아오는 조선족 대학생과 젊은이들, 그리고 한국인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는 모습도 많이 목격하였다.

손 설립자는 중국 내 한 사범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5년 정도 일했다.

그녀는 퇴직 후 사업자등록증 등을 발급하는 공사국으로 옮겨 부국장까지 올랐으나 2002년 퇴직해 2006년 지금의 양로원을 설립했다.

그녀는 딸을 의대로 보냈지만 의사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의사인 딸이 양로원에 계신 동포 어르신들을 잘 치료해주기를 기대했으며 졸업하자마자 양로원장 자리를 넘겨주었다.

2대 원장이 된 김설화 원장은 조선족 3세이다.

외할머니의 고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외할머니가 끊임없이 한국 사람이라는 것, 같은 핏줄인 한국 사람에 대한 동포애를 강조했던 것만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 교육은 연변대학 의학원에서 임상의학을 전공해 의사로 편하고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그를 조선족 어르신들을 모시는 양로원장으로 이끈 힘이 됐다.

김 원장은 조선족 1~2세대의 경우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결국 중국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거나 혼자 남겨진 경우도 많아 외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어머니는 양로원을 설립하셨고 김 원장이 의학원을 졸업하자마자 이를 이어받게 했다.

물론 자신만 생각한다면 의학원 졸업 후 의사로 일하는 게 훨씬 더 좋지만, 어머니가 동포 어르신들을 돌보아야 한다며 원장직을 맡으라는 권유에 주저 없이 동의했다.

백두산 양로원은 중국 정부의 지원 없이 이곳에 사는 어르신들이 내는 돈과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하고 있다.

100% 조선족만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할 계획이다. 홈페이지도 한글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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