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광복 77주년 천안 '독립기념관' 전경(사진=김호선기자)
광복 77주년 천안 '독립기념관' 전경(사진=김호선기자)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 그것은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는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독립기념관 벽에 전시된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서문중에서…. 광복절 연휴를 맞아 독립기념관과 흑성산 그리고 유관순열사 생가까지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폭우로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독립기념관은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자랑스런 선조들의 발자취와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여 후손들에게 민족의 얼과 긍지를 심어주는 기념관이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내부에 세워진 석상 "불굴의 한국인상"(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내부에 세워진 석상 "불굴의 한국인상"(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은 1983815일 첫 삽을 뜨고 1987815일 준공. 개관하였다. 815일 광복절 77주년을 맞아 찾은 "독립기념관기념관을 병풍처럼 둘러쌓고 있는 흑성산(黑城山 해발 519m)’기슭에 있. 흑성산은 목천읍 차령산맥 줄기로 독립기념관 개관 이후 그 명성이 알려져 많은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정상에는 석축으로 쌓은 성터(둘레 2290, 높이 6)와 웅장한 성루가 있다. 독립기념관 주변에는 김시민, 이동령, 유관순, 조병옥등 많은 구국열사들을 배출한 지역이다.

독립기념관 입구에서 바라보는 겨레의 탑과 겨레의 집 그리고 흑성산(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입구에서 바라보는 겨레의 탑과 겨레의 집 그리고 흑성산(사진=김호선기자)

풍수지리상 흑성산은 서울의 외청룡에 해당되고 금계포란형이라 한다.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의 명당자리로 길지라는 평이다. 인근에 있는 병천 은석산(銀石山 457m)에는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1691~1756)’ 가 안장되어 있다. 이 묘터가 독립기념관과 관련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은석산은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수려하여 아름다운 산이다.

독립기념관 광장에는 815개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공원과 겨레의 집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광장에는 815개의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공원과 겨레의 집 모습(사진=김호선기자)

현재 독립기념관이 들어선 자리에 역사적인 일화가 있다. 어사 박문수가 죽자 어사의 묘를 이곳 독립기념관 자리로 정하였다 한다. 하지만 한 유명한 지관이 이곳은 2~3백 년 후 나라에서 중요하게 사용하게 될 자리이다. 그때 가면 이장이 불가피하게 되니 이곳에서 십여리 동쪽에 묘를 쓸 것을 권하여 은석산에 묘를 정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은석산 어사 묘 앞에 앉아 병천 일대의 펼쳐진 넓은 들녘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장관이다. 새하얀 비닐하우스가 한 폭의 그림이다.

독립기념관 무궁화 공원(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무궁화 공원(사진=김호선기자)

흑성산 기슭에 독립기념관이 들어서게 된 또다른 이유는 지형이 넓은 땅이지만 기념관 동쪽 15km 지점에 매봉산(170m)’이 있다. 매봉산은 낮은 마을 뒷산이지만 이 산 기슭에 일본 제국주의에 항거하다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자랑스런 유관순열사(1902~1920)’의 생가, 초혼묘(超魂墓)와 봉화탑, 기념사당 등이 있다. 매봉산에는 열사의 초혼묘가 봉안되어 있는데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열사의 나라사랑과 자주독립의 기상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

독립기념관 통일염원공원(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통일염원공원(사진=김호선기자)

유관순기념관 앞 열사 동상에 한국의 딸 유관순은 우리 민족정기의 화신이다. 일천구백십구년 기미 삼월 일일 어린 여학생의 몸으로 태극기를 높이드니 여섯 고을이 향응하고 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니 왜적의 총칼이 보이니 아우내 장터가 피로 물들었다. 왜병에게 잡힌몸이 되었으나 자유를 굳게 주장하여 왜적의 재판을 거절하니 적의 법관도 크게 놀랐다(중략) 시 구절에 가슴이 뭉클해지며 숙연해진다.

독립기념관 광개토대왕비(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광개토대왕비(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에서 단풍나무 숲길을 따라 1시간여 오르면 흑성산 정상이다. 산 정상에는 산성터, 방송시설, 군사시설 등이 있다. 흑성산 지명은 '검은 성'을 한자화한 것으로 단순히 흑색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다. ''은 높다, 크다, 거룩하다, 신성하다는 등의 뜻을 함축한 옛말이라 한다. 흑성산은 글자 뜻대로의 검은 산이 아니라 큰 산, 신령한 산, 거룩한 산 등의 뜻을 지닌 산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비로 인해 확인하지 못해 아쉽다.

독립기념관 아름다운 백련못(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아름다운 백련못(사진=김호선기자)

산 정상에는 삼국 시대의 고성 남매성(일명 오누이 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산 밑에 천하장사인 두 남매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남매가 서로 시합을 하여 남동생은 쇠나막신을 신고 한양을 다녀오고, 그 시간에 누이는 산에 돌로 성을 쌓아 먼저 마치는 사람이 이기는 시합이었다 한다. 모친이 딸을 보니 성을 다 쌓아 가므로 딸에게 아침밥을 먹은 후 성을 쌓도록 권하는 바람에 딸이 밥을 먹는 사이에 한양에 간 남동생이 돌아와 시합에서 이기게 되었다. 시합에 진 누이는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립기념관 단풍숲길에 조성된 수많은 선조들의 시어록비(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단풍숲길에 조성된 수많은 선조들의 시어록비(사진=김호선기자)

선조들은 자주와 독립의 정신으로 불가능에 도전하여 가능을 창조한 독립운동이었다, 독립기념관은 5천만 국민이 함께 만들어 가는 기념관이다. 국민이 주인으로 언제나 찾아가 참배하고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에 머리숙여 인사를 드리는 기념관이다. 기념관 건립 당시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뜻의 동참하여 건립 기금을 내었고 많은 자료들과 나무들을 기부로 조성된 기념관이다. 국민 모두의 정성으로 건립된 기념관으로 숙연하고 웅장한 느낌이다. 만감이 교차하는 기념관으로 비가 내리는 날에도 아이들 손을 잡고 기념관을 찾은 가족들이 자랑스럽게 보인다.

독립기념관 추모의 광장(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추모의 광장(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은 대한민국을 지켜온 민족의 뜨거운 역사를 만날 수 있는 거룩한 장소이다. 기록에 의하면 20세기 전반기에 지구상의 민족 중 약 80%가 제국주의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지배를 받았다 한다. 이들 국가 모두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전 민족이 들고 일어나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연합국으로부터 독립을 약속받은 것도 한국 밖에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웅장한 겨레의 집에서 그 위엄을 느낄 수 있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앞 광장에서 본 겨레의 탑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앞 광장에서 본 겨레의 탑 모습(사진=김호선기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하였지만 한국처럼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기념하는 독립기념관을 건립한 나라도 한국뿐이라 한다. 독립운동은 일제와 싸운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변화 발전시킨 것들이 수없이 많았다 한다. 국민이 주인이 된 것,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 시대로 발전시키는 것, 백성에서 국민으로 살게 된 것,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건립한 것 등이 모두 독립운동을 통해 이루어진 산물이라고 이 기록은 적고 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다시금 자랑스럽게 확인할 수 있는 독립기념관이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에서 폭우 속에 본 겨레의 탑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앞에서 폭우 속에 본 겨레의 탑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선조들이 일제에 항거하여 일어난 독립운동은 민족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한다. 현재의 우리가 있게 한 것이 바로 독립운동의 산물이라 한다. 독립운동이 남겨준 소중한 자산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든 정신이 바로 독립운동을 하는 정신이었다 한다. 독립운동을 흔히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비유했다. 일제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부수려는 도전이라 비웃기도 했다는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부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결국 바위는 부숴지고 대한민국은 독립을 쟁취한 위대한 국가였다.   

4년 전 찍은 흑성산 정상에 있는 산성 문(사진=김호선기자)
4년 전 찍은 흑성산 정상에 있는 산성 문(사진=김호선기자)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이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9宣言)하노라 기념관 벽에 쓰여진 3.1독립선언서 중에서선조들은 독립이 불가능을 가능한 일이 아니라 2천만 국민이 뭉쳐 서로 믿고 신뢰하고 도전하면 반드시 독립할 수 있다는 정신이었다. 그리하여 가혹한 식민지배와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창조했다. 대한민국이 지금의 세계 10위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독립정신이라 한다  

매봉산에 안정되어 있는 유관순열사 초혼묘(사진=김호선기자)
매봉산에 안정되어 있는 유관순열사 초혼묘(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은 민족의 모든 정신적 힘을 뿜어내고 생산하는 장소다. 식민지 지배라는 수난과 시련을 이겨낸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는 곳이 독립기념관이라 한다. 독립기념관을 통해 민족의 자부심과 긍지를 가슴에 담고, 자신의 삶과 민족의 발전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기념관이다. 기념관에서 보고 생생한 목소리로 듣고 느끼고 체험하는 동안 애국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병천면 용두리 매봉산 기슭에 있는 유관순열사 생가(사진=김호선기자)
병천면 용두리 매봉산 기슭에 있는 유관순열사 생가(사진=김호선기자)

천안의 랜드마트가 되어 있는 독립기념관에는 민족의 비상을 상징하는 겨레의 탑(51m), 거레의 집, 입체영산관, 통일염원동산, 추모의 장, 광개토대왕릉비, 각 종 조형물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소장품은 약 90,0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상시 4,00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무궁화 공원 등 각종 테마공원, 캠핑장, 단풍나무숲길, 백련못, 태극기마당, 상설전시관(1~6)과 특별전시(7)로 구분되어 있다

매봉산 정상에 조성된 봉화대(사진=김호선기자)
매봉산 정상에 조성된 봉화대(사진=김호선기자)

전시관 제1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겨레의 뿌리 전시관으로 규모가 매우 크다. 2관은 겨레의 시련 전시관부터 근대 조선을 전시한다. 서구 열강들이 조선을 가지기 위해 경쟁했던 자료를 전시하는 관이다. 3관은 겨레의 함성 전시관으로 일제에 대한 민중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전시관이다. 4관은 평화누리관으로 독립운동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전시관이다.

병천 은석산에 조성되어 있는 '어사 박문수 묘'(사진=김호선기자)
병천 은석산에 조성되어 있는 '어사 박문수 묘'(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제5관은 나라되찾기 전시관이다. 국내는 물론 상해 등 해외에서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전시관이다. 조선의용대 등 각종 의열투쟁과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등을 전시한다. 6관은 새나라세우기 전시관이다. 일제의 억압에 맞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을 전시하고 있는 관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부터 1945년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과정까지 전시하고 있다. 7관은 특별전시관이다. 독립기념관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누구나 한번은 가족단위로 자주 방문할 수 있는 기념관이다.

독립기념관 안내도(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 안내도(사진=김호선기자)

독립기념관과 유관순열사 생가를 둘러 본 후 허기진 속을 달래기 위해 찾는 곳이 있다. 병천순대거리이다. 병천순대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우내장터 순대거리에 있다. 면 단위에 이러한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장터이. 300m 도로 양쪽에 수십 곳의 순대국밥집이 도열해 있다. 집집마다 맛들도 다르지만 맛깔스럽다. 독득한 맛으로 서민들의 애환이 있는 순대국은 저렴한 가격으로 그 맛을 느낄 수 있어 사랑받는 전통 토종음식이다. 다시금 방문하여 그 맛을 체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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