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1946.9.1~2009.5.23)대통령(사진=김호선기자)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1946.9.1~2009.5.23)대통령(사진=김호선기자)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140m) 봉하峰下마을에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 대통령" 묘역이 있다 "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지에 따라 "대통령 노무현" 여섯 글자만 새긴 너럭바위 아래에 노무현 대통령이 안장되어 있다. 묘역에는 1만 5천여개의 작은 박석들이 있는데 박석에 새겨진 추모의 글들이 비석의 비문을 대신하고 있다. 이 박석들은 1만 8천여 국민의 기부로 완성된 대한민국 최초의 '국민참여묘역'이다. 

봉하마을 사저 부근에 조성되어 있는 대한민국 '제1호 국가보존 묘지"(사진=김호선기자)
봉하마을 사저 부근에 조성되어 있는 대한민국 '제1호 국가보존 묘지"(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유언장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도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2009. 5. 23 새벽 

대통령 사저 뒤 봉화산에 있는 통한의 '부엉이바위'(사진=김호선기자)
대통령 사저 뒤 봉화산에 있는 통한의 '부엉이바위'(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잠들어 있는 묘역의 꽃 한송이 올려 놓고 묘지 주변에 있는 박석들에 새겨진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뭉클해 진다. 추모의 글 하나하나가 가슴을 사무치게 한다. 아프다. 슬프다. 묘역에서 고개를 들면 사자바위(봉수대)와 부엉이 바위가 한 눈에 들어 오는데 눈시울을 젖게 한다. 접근할 수 없는 부엉이바위 입구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 비통한 가슴을 묻는다.

봉화산 누워있는 마애불(사진=김호선기자)
봉화산 누워있는 마애불(사진=김호선기자)

봉화산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높이 240cm.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발견 당시부터 누워 있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한다. 마애불은 오랜 세월 누워있어 비 바람에 코와 입 등이 마모되어 있다. 마애불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며 지그시 감은 눈에서 깊은 사색을 느낄 수 있다. 누워있는 마애불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운명을 되새기게 한다.  

봉화산 정토원 대웅전 내부(사진=김호선기자)
봉화산 정토원 대웅전 내부(사진=김호선기자)

봉화산 '정토원 수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전직 두 대통령을 만난다. 정토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49제를 지냈다. 정토원에서는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봉화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간식거리 등 공양이 제공된다.  

봉화산 정상 호미든 관음상(사진=김호선기자)
봉화산 정상 호미든 관음상(사진=김호선기자)

봉화산 정상에는 호미든 관음상이 있다. 이 관음상은 6.25 전쟁 후 보릿고개 시절 농촌봉사활동을 위해 찾아온 불교 대학생들이 농민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관음상을 세웠다 한다. 호미든 관음상에서 바라보는 김해들녘은 광활하며 거대한 낙동강이  들판을 가로 질러 흐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마듸로 곡창지대다.

사자바위 봉수대(사진=김호선기자)
사자바위 봉수대(사진=김호선기자)

봉화산 산행 중에 사자바위 봉수대에 오른다. "사람사는 세상"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대통령이 퇴임 후 만들고자 했던 아름다운 들녁이 한 눈에 보인다. 대통령 사저와 묘역이 조망된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드는 슬픈전망대이다.

사자바위(봉수대)에서 조망된 대통령 묘역과 생가 그리고 봉하마을 들녁(사진=김호선기자)
사자바위(봉수대)에서 조망된 대통령 묘역과 생가 그리고 봉하마을 들녁(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 9월 1일 김해 진영 봉하마을에서 출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중학교 학업 성적이 우수하였으나 집안 형편상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상고에 입학, 1966년에 졸업하였다. 1975년 네 번째 도전 끝에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 판사로 임용하였다. 하지만 이듬해 사직하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 ,학생.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2003년 2월 25일~2008년 2월 24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1988년 국회의원 당선, 정치에 입문한다. 5공 청문회 당시 초선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청문히 스타로 국민적 주목을 받았다. 이후 국민의 정부에서 해양수산부장관을 거쳐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1201만 4277표(48.91%)를 얻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08년 2월 24일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고향인 진영 본산리 봉하마을로 귀향, 평범한 농촌생활을 하면서 오리농사(오리쌀), 마을청소 등 '사람사는 세상'이라는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소통하였다. 2009년 5월 23일 사저 뒷산에 있는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서거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생가(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 생가(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평소 '원칙과 소신'을 강조하였다. '맞습니다. 맞고요'란 말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혁과 통합을 바탕으로 국민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사회를 강조하였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어 나갔으며 행정수도 이전 등으로 균형잡힌 국토발전을 모색했다. 대통령은 임기 말 2007년 10월 4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분단 이후 최초 걸어서 판문점을 통과,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번영을 위한 10.4선언을 발표했다. 

봉하마을 국가보존묘역에 전시된 각 종 그림(사진=김호선기자)
봉하마을 국가보존묘역에 전시된 각 종 그림(사진=김호선기자)

김해 진영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노오란 리본과 바람개비, 각 종 예쁜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그 길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365일 발걸음이 이어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대통령으로 눈물이 있었다. 통기타를 치면서 부르던 '상록수'가 생각난다. 대통령 사저가 있는 봉화산에는 가볍게 등산할 수 있는 등산코스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뜨거운 인생발자취(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뜨거운 인생발자취(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숨결이 새겨져 있는 화포천 습지생태공원에는 대통령이 손녀를 자전거에 태우고 지나던 대통령길이 있다. 오염으로 방치된 화천을 대통령이 복원한 생태공원이다. 그 공원에는 자전거로 걸어서 체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코로나19로 일부 제한되고 있지만 걷고 싶을 길, 대통령과 함께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대통령길이다. 

전시되고 있는 각 종 사진 모습(사진=김호선기자)
전시되고 있는 각 종 사진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으로 '바보 노무현', '영원한 내 마음의 대통령'이라 한다. 대통령은 지역구도 타파, 지방분권, 상식이 통하는 세상,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등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철학이요. 정신이다. 대통령 서거 12년을 맞아 어려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묘역을 찾은 추모객 발걸음이 끊임없다. 

평소 익살스런 대통령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평소 익살스런 대통령의 모습(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은 소통하며 살아야 한다. 지배하는 사람도 있고 지배받는 사람도 있는데 내 희망은 이 차이가 작기 바란다.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 사이에 가장 큰 단점은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권력을 가진자와 국민이 소통해야 한다 등 대통령 직무 기간동안 유명한 연설문 등이 전시되고 있다. 다시금 서민대통령 노무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낮은 사람 친구같은 대통령을 강조한 사진(사진=김호선기자)
낮은 사람 친구같은 대통령을 강조한 사진(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악성 댓글에 대해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 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대통령을 욕함으로써 주권자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저는 기쁜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라는 말을 남겼다. 또한 검찰개혁에 대해서도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어떠한 번영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사진=김호선기자)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때 "강물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라는 이름으로 시집이 출간되었다.  이 제목은 2008년 노사모 자원봉사센터 개소식 방명록에 쓴 노무현 대통령의 친필이다. 책에 수록된 시인들은 정치인 노무현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성품에 대한 시들이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의 역사도 길게 보면 반드시 진보한다. 진보의 가치는 연대라 애기한다. 그건 못난 사람들끼리 연대도 있지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연대를 포함하는 것이다. 사회의 변화를 저는 진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 보면 다 그렇습니다 라고 말씀하였다.  억압받은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역사를 진보라고 강조한 내용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 걸어서 판문점을 넘는 대통령모습(사진=김호선기자)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 걸어서 판문점을 넘는 대통령모습(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한일관계의 대해서 '독도 문제에 있어서도 독도는 우리 땅이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렸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이다.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 확립을 상징하는 문제이다.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일이다. 독도 문제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의식, 자주 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화문을 통해 강조한 바 였다. 

대통령의 흉상(사진=김호선기자)
대통령의 흉상(사진=김호선기자)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한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한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이다. 이 말은 2006년 4월 3일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에 대통령으로 최초 참석하여 추도사 일부내용이다. 이와같은 어록이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이다. 서민 대통령, 소통하는 대통령 등을 뒷받침하는 말이나 강조한 연설문이다.   

대통령 사저 입구, 묘역, 산책로 등에 결려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 리본(사진=김호선기자)
대통령 사저 입구, 묘역, 산책로 등에 결려 바람에 휘날리는 노란 리본(사진=김호선기자)

노무현 대통령 서거 12주년을 맞아 이 한 편의 시詩로 추모합니다.

바람도 없는 허공에 들찔레꽃 하얀 잎 하나 혼자 지고 있네요 치열하게 살았으니 욕되게 살 수는 없어 벼랑 끝에 한 생애를 던진 저 한 점 꽃임의 영혼을 하늘이여 당신의 두 팔로 안아 주소서

그의 좌절은 나의 좌절 그의 한계는 이 나라의 한계 그의 굴욕은 우리들의 굴욕 그의 자존심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 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뉘우치노니 그의 늑골에 금이 가는 것은 권위주의를 벗으려는 노력에 금이 가는 것

그의 정강이뼈가 부서지는 것은 지역주의를 깨보려던 시도가 부서지는 것, 그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은 정의로운 역사를 세우려던 몸부림이 쓰러지는 것, 그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균형 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향한 간절한 소망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므로 역사여, 당신의 가슴으로 이 조각난 육신을 받아 주소서

다시는 손녀 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길을 달리는 대통령을 가질 수 없을지 모르니 밀짚모자를 쓰고 구멍가게 앉아 담배를 꺼내 무는 소탈한 우리의 대통령을 만나지 못할지 모르니 그가 꿈꾸던 아름다운 가치들이 모조리 불에 타 허망한 연기, 한 주먹의 재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 잔혹한 시대여, 그를 우리의 벗으로 다시 돌려주소서

그가 조롱하고 손가락질 하던 야만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그를 업신여기고 비아냥 거리던 비겁한 권력들은 지금 무슨 혀로 준비하고 있습니까 가장 뜨거웠으나 가장 외로웠던 가장 도전적이었으나 가장 힘들어 했던 그를 혼자 벼랑으로 걸어가게 한 이 누구였을까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뉘우치는 눈물 발등을 적시지만 이제 어디서 그를 만나야 합니까 이 땅의 슬픈 역사여, 아아 대한민국이여!

벼랑에 지는 꽃/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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