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학동 만학도 이발사 김진석 씨. 한국뉴스
인천 청학동 만학도 이발사 김진석 씨. 한국뉴스

인천시 연수구 청학동의 한 목욕탕 한 켠에는 작은 이발소가 있다. 

김진석 씨(72)는 지난 20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이곳에 출근한다. 

58년 동안 이발사라는 세월의 무게는 그의 오른손 손가락 관절의 변형을 가져왔다.  

그는 김포 월곶초등학교를 졸업한 열 네살에 시장통에서 배웠던 이발 기술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농촌에서 가난한 살림과 공부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가지 않았다. 

당시 월곶초는 70여 명씩 3개 반으로 그의 동창들은 중학교 교복을 입더니 얼마 후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또 대학교를 나와 교수와 성공한 사업가로, 고위직 경찰관으로 나름의 삶을 꾸려갔다.  

시골 출신들답게 친구들의 우정이 깊어 가끔 막걸리를 함께 마시며 옛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김진석 씨는 나이가 들면서 가슴 한 쪽에 '국졸'이라는 학력에 대한 아쉬움이 쌓여갔다. 

젊었을 때부터 미추홀구(옛 남구)에서 이용사협회장을 맡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발 봉사를 해오던 밝은 성격의 그였지만, 가끔 누군가 어디 중·고등학교를 나왔냐고 물어보면 부끄러워 하던 그다. 

김진석 씨(사진 왼쪽 6번째)의 남인천고등학교 졸업식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는 모습. 한국뉴스.
김진석 씨(사진 왼쪽 6번째)의 남인천고등학교 졸업식에 초등학교 친구들이 찾아와 축하해 주는 모습. 한국뉴스.

그래서 그는 결심했다.

4년 전인 68세의 나이에 다시 학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가장 큰 후원자는 아내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둘째 딸이다. 

게다가 그의 친구들도 가세하며 이 씨의 만학의 꿈을 응원했다. 

이 씨는 대안학교인 남인천중학교에서 잃어버린 꿈을 찾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발 일과 수업을 병행하는 '행복한 고난'이 시작됐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수업이 제한되자, 하루하루 배운 것을 복습하기도 벅찼다.

그렇지만 어렵게 배운 초급 영어로 친구들과 SNS 채팅창에서 대화하면 너무나 기뻤다고 그는 전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학업의 기쁨이었다.

2년의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 씨는 바로 2년의 고등학교 과정에 들어갔다.  

처음 학업을 다시 시작할 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은 '무조건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생겼다. 

지난달 31일 이 씨는 그토록 염원했던 남인천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감격의 순간에 초등학교 친구들 30여 명이 축하를 보내왔다. 

김진석 씨는 "만약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이 학업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면 무조건 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얼마전 그는 남양주시에 있는 서정대학교 복지학과에 합격했다.  

만약 대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게 된다면 대학 과정도 마치겠다는 각오를 세우고 있다. 

만학의 꿈에 도전하고 있는 김진석 씨는 동시에 오늘도 작은 이발소에서 방송과 신문을 펼쳐 보며 오랫동안 인연을 맺은 단골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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