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흐르는 풍경[XXI]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라잉넛-말 달리자(동영상=유튜브채널 KBS kpop)

시절이 하 수상하니 별의별 희한한 곳에서 문자가 온다. 
일단 보이스 피싱으로 의심되는 문자와 전화가 하루에 10통 이상씩 오는 건 기본으로 깔고, ‘윤석열 테마주로 대박 나기’ 등의 성가신 주식 테마 문자도 매일 쉴 새 없이 오고 있다. 
이젠 불법 취업으로 의심되는 문자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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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내용은 이러하다. 
월 400만 원 이상을 보장한다니! 나 같은 실업자 홀아비에게는 제법 ‘혹’하고 끌리는 문자였다. 
더구나 요즘 주식 폭락으로 매일 매일의 생계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돈도 궁하던 차에 마침 잘 되었다!’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필자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언제나 지혜를 빌려주었던 대학 동기들에게 문의를 해봤다. 

필자 : 나에게 이런 문자가 왔는데 어떻게 생각해?
뚱땡 : 전국 유람하면서 돈도 번다니, 나도 같이 해보자~
소심 : 하지 마! 
주당 : 술집 기도(! 어깨) 같은 거면, 나도 같이 하자~
세심 : 일단 전화를 해서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렴 
(역시 세심이는 참 세심하기도 하지!)

만약에 문자에서 언급한 일이라는 게, 
서울 강남의 잘 나가는 술집의 어깨(!=문지기) 같은 일이라면 필자처럼 송중기+공유 뺨치게 잘생긴 남자가 고급 유흥주점 앞에서 손님을 유혹한다면 당연지사,
그 술집은 대박이 날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처럼 멋지고 잘생긴 남자가 술집 앞에서 소위 ‘삐끼’ 같은 걸 한다면,
나에게 반한 뭍 여성분들의 애정공세로 필자의 여성 편력이 너무 복잡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내와 이혼할 때(아무도 안 물어보고, 아무도 안 궁금해했지만), 피터팬 혼자서만 마음속으로 강철 같은 굳은 다짐을 한 게 하나 있는데, 
‘아내와 비록 이혼을 하더라도 영혼을 다 바쳐서 사랑했던 아내와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가 될 운명의 여인이 아니라면, 절대로 내 곁을 내어주리 않으리라!’라는 비장한 각오였다.        
하지만 각오는 매우 비장했다 하더라도 홀아비에 실업자로 손가락만 빨고 살 수는 없었고, (광고)문자 속에서 말한 직업이 정확히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적혀 있던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봤다.     

피터팬 : 문자보고 전화드렸어요 사람 구하신다고요?
상대남 : 네, 혹시 전과 있으세요?
피터팬 : 네? 전과요? 아니요,, 
상대남 : 그럼 잠수타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피터팬 : (잠수요? 제가 잠수 전문인데요... 사실은 제가 우울증이 심해서 병세가 악화되면 모든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잠적하는데요...) 
            잠수라뇨? 사람을 어떻게 보시고~~ 저 그렇데 신의 없는 사람 아닙니다. 
상대남 : 저희 일은 고가의 시계, 보석 등을 저희가 지정한 거래처에 가서 받아오면 되는 겁니다.
             차량 유지비와 식대 등 따로 드리고요, 일당 15만 원입니다. 
피터팬 : 그럼 한 달에 20일 일하면 300만 원이네요?
상대남 : 그렇죠. 어렵지도 않아요. 전부 서울에 있는 거래처에서 고가의 물건을 받아오시는 거예요. 
            지금 일하고 있는 직원분들도 다 나이 드신 여성분들인데 아무런 문제 없이 잘하고 계십니다. 
           단지 물건이 고가라서 몇 억 원씩 하니까, 물건을 갖고 만약에 잠수 타시면 저희가 끝까지 추적합니다. 

이런 종류의 일을 시킬 사람을 구한다는 제안은 필자에게도 처음 있는 일인지라, 일단 호기심은 생겼다. 
그러니까 한 달에 20일 동안 일하면 300만 원을 준다는 이 일을 간단히 요약하면, 

1. 출근을 한다.
2. 담당 관리자가 지정해주는 소위 '거래처'라는 곳으로 간다.
3. 고가의 시계 보석 등 수억 원어치의 물건을 인수받는다.
4. 물건을 차에 싣고 회사로 돌아와서 물건을 인계한다.
5. 일당으로 15만 원을 받고 퇴근한다. 끝.  

(생각보다 간단하네,, 와우! 이제 나는 부자야! 그래도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피터팬의 진실한 벗 대학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시작해야지!) 

피터팬 : 친구들아~ 아주 쉬운 일인데 보수는 괜찮아~ 해볼까?
뚱땡 : 여기저기 거래처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 재밌겠다! 같이 하자~
소심 : 하지 마.
주당 : 일 끝나면 좋은 데 가서 여성분들하고 회식하는지 꼭 물어봐봐~
세심 : 내가 그런 문자와 관련된 뉴스를 본 거 같아, 링크를 보내줄게.

평소 꼼꼼하고 사리분별이 확실한 친구 '세심'이 보내준 뉴스 링크에 따르면 요즘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종 '사기 구인광고'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거다!

- 손쉽게 하루 10만 원을 버는 법 - 
- 일이 없어도 월 300, 일이 많으면 월 600 보장 - 
- 특별한 기술이나 경험 없어도 가능 -  
    
등의 광고로 유혹을 하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아무 문제가 없는 물건 배송이라고 해놓고, 막상 택배 물건 안에는 마약, 대마초류 등의 심각한 불법 물건이 있기도 하고, 보이스 피싱의 피해자에게 가서 돈을 받아오는 일을 시키기도 한단다.

“...최근 급증한 불법 알바는 ‘보이스피싱 수금책’이다. 기존에는 ATM(현금 자동입출금기)을 이용한 계좌 이체가 많았지만 금융 당국이 계좌 지급 정지 등 다양한 방지책을 내놓자 직접 만나 돈을 건네받는, 이른바 ‘대면 편취(騙取)’ 알바가 크게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3244건이던 대면 편취 적발 건수는 작년 1만 5111건으로 5배 수준이 됐다. 경찰 관계자는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꾐에 넘어간 이들이 많다”라고 했다...” (신문 기사 내용 중)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보니까, 단순히 배송만 했던 사람에게도 벌금은 물론 징역 1년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무거운 형까지 선고됐음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3년 전쯤 보이스 피싱으로 3,000만 원의 손해를 보기도 했었다. 
딱히 멍청하거나 어리숙해서라기 보다, 10여 명의 조직원들이 필자를 둘러싸고 한 달 정도 공작을 하니까 아무리 셜록처럼 영특한 필자라도 속아 넘아 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보이스 피싱의 아픔을 겪었던 경험을 살려, 이처럼 사기성이 농후해 보이는 소위 ‘배송업무’에 가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손쉽게 월 400만 원 보장’이라는 사기성 광고는 무시하기로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유행병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하 수상한~ 시절’이 생각보다 훨씬 더 길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에 따라 생활고가 가중된 계층의 약한 고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악성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나에게 문자를 보낸 업체의 상담원에게 “내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느냐?”라고 물어보니까, 나와 같은 실업자들의 명단을 넘겨주는 업체가 따로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실업자라는 걸 아는 곳은 국민연금공단이나 국민건강보험공단 같은 곳일 텐데, 나처럼 우리사회의 약한 고리에 있는 사람들의 명단이 어떻게 이런 업체에 넘어갈 수 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실업자인 나의 처지도 처량하고 나의 개인정보가 마구 돌아다니는 세상도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우울한 기분일 때 기분이 뻥 뚫리는 신나는 음악은 뭘까?  

노래방에서 누구라도 마이크를 잡고 이 노래를 부르면, 모두를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 바로 그 노래!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수록되었던 1집 표지.
노래방에서 누구라도 마이크를 잡고 이 노래를 부르면, 모두를 일어나게 만들 수 있는 바로 그 노래! 크라잉 넛의 [말 달리자] 수록되었던 1집 표지.

오늘 음악이 흐르는 풍경에서 듣고 싶은 음악은 국내에서 가장 신나는 음악을 만드는 펑크락 밴드 크라잉 넛(Crying Nut)의 [말 달리자]이다. 

노래하면 잊혀지나 사랑하면 사랑받나
돈 많으면 성공하나 차 있으면 빨리가지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 들어
우리는 달려야해 바보놈이 될 순 없어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말 달리자  
- 말 달리자 / 크라잉 넛-    

1998년 5월에 크라잉넛의 데뷔 앨범 속에 수록되었던 [말 달리자]는 신선한 충격자체였다. 
이 노래는 들을때도 신이나지만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목청껏 불러 제끼면 더 신이 나는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 속에서 ”닥쳐 닥쳐 닥치고 내 말들어~“ 라는 가사가 여러 번 반복되는데, 요즘처럼 ‘하~ 수상한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시절에 세상의 모든 사기꾼 들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다. 

선량한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던, 
그 입 좀 이젠 그만 닥쳐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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