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고립주의 승리사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고립주의 승리사관
  • 한국뉴스
  • 승인 2018.10.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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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철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필자는 지난 9월 29일 뉴욕에서 개최된 작은 세미나에 참석할 경험이 있었다. 태형철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이 직접 자리하지는 못했지만 축사를 보냈고 이를 북한 외무성 관리가 대독한 터라 현 시국에 대한 북한의 의도를 읽는 데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자리의 하나였다.

신뢰구축과 인정투쟁

이 자리에서 필자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북한의 외무성 관료로부터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태 총장이 축사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강조하자 미국 측 연사가 북한이 미국에 선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냐고 비판한 것에 대한 해명이었다.

“태총장의 연설을 우리가 미국에 선행동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한번도 미국에 선행동을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비핵화는 철저히 동시 행동 조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신뢰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동시행동은 뭔지 신뢰구축은 뭔지 알듯 말듯 한 논법이었지만 북한 측이라고 해서 외교관들이 사용하는 모호성에 근거한 레토릭을 사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 근저에 깔린 의도를 읽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필자가 보기에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다’라는 북측의 논법을 굳이 부정할 일은 아닌 듯 했다. 그들이 신뢰구축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선행동에 대해 미국 측이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선행동이 아니지만 신뢰구축을 위한 뭔가가 먼저 필요하다는 이상한 논법, 왠지 떼를 쓰는 듯한 북한의 이런 논법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자는 인정투쟁(recognition struggle)의 개념을 떠올렸다. 비핵화를 위한 본 무대에서의 행동 대 행동에 의한 상호 조치가 아니라 글로벌 존재로 자신을 인정받기 위한 사전 프로세스의 설정, 그것이 이런 인정투쟁식의 논법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북한의 피포위의식과 고립주의 승리사관의 앙상블을 깰 때

필자의 작은 의문은 이어진 평양 방문에서 다소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방북 시 참관한 대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의 한 장면은 많은 서사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철교 형상을 아래에 두고 건설의 동음을 울리며 등장한 카드섹션 문구는 그들의 고립주의와 승리사관의 묘한 앙상블 그 자체였다.

뭐랄까. 북한이 오랫동안 가져온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은 그 연원이 90년대만이 아니라 1950년으로까지 이어진다. 소위 인민군과 유엔군이라는 이 구도는 북한에 오랫동안 자부심 가득한 승리사관을 부여해준 힘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나라라는 고립주의와 피포위의식의 원형이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필자는 종전선언이 왜 신뢰구축의 영역에서 논의되는 지 조금은 이해할만했다. 미국과의 종전은 유엔과 북한이라는 피포위의식을 깨고 자신을 인정받음으로써 오래된 고립주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전제한 승리사관이다.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했고 언제나처럼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겨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대집단체조의 강한 메시지는 북한 인민들에게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상징과 의미체계로 다가가고 있을 듯했다. 이런 승리 사관에 근거하고 있는 한 북한 체제의 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멘탈리티’로 이어지는 순간 북한은 또 다시 돌파의 외교로 회귀할 것이다.

북한의 존재적 합법성 인정할 때

북한이 혼자가 아니라는 강한 메시지가 필요한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능라도의 15만 북한 인민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너희 편에서 함께 나아갈 테니 우리를 믿고 세계로 나오라.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이 아베 총리가 그리고 끝내 트럼프 대통령이 똑같은 메시지를 던질 때, 15만 군중들의 가슴팍에 묻어있는 오래된 트라우마가 달래지지 않을까?

북한의 인정투쟁이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핵화의 시간벌기로 해석되는 한, 우리는 영원히 해법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의 고정된 프레임이 그리고 북한의 트라우마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의 고립주의 승리사관이 비핵화와 화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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