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와 해양경찰
‘해상왕’ 장보고와 해양경찰
  • 한국뉴스
  • 승인 2018.09.1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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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열 해양경찰청 차장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기간 베트남은 ‘박항서 매직’으로 축제 분위기가 대단했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진 못했지만 매 경기 베트남 축구선수들이 상대팀 골대의 그물을 흔들 때마다 베트남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그들의 4강 진출이 역사 상 ‘최초’의 순간이었으며, 박항서 감독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가슴 벅찬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 그것이 바로 베트남 국민이 환호하는 이유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은 일이다. 역사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해상왕’ 장보고가 그러하다. 장보고는 828년 당나라 해적 소탕을 위해 신라 흥덕왕에게 요청해 청해(현 완도)에 진영을 구축했다. 장보고는 병사 1만 명을 이끌고 당나라 해적을 무찔러 서·남해안을 장악했고, 이를 발판 삼아 신라, 당나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그의 활약상은 우리나라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물론 중국 ‘신당서’, 일본의 ‘일본후기’, ‘속일본기’, ‘속일본후기’ 등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중·일 세 나라 역사서에 모두 기록될 만큼 장보고는 바다를 지키고 그 바닷길을 이용해 무역까지 성사시킨 존경받는 인물로 표현된 것이다.

우리나라 남쪽 끝 완도에서 유례가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해상왕’ 장보고. 바다를 장악하던 그의 기세는 누가 이어받았을까. 필자는 과감히 ‘해양경찰’이라 답해본다. 해양경찰은 1953년 12월 23일 해군에서 인수받은 소형 경비정 6척과 658명의 경찰관으로 부산에서 시작했다.

비록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 국민 안전과 바다 치안을 위해 끊임없이 달려와 현재는 5000톤급 대형함정을 포함해 총 323척의 경비함정과 1만 3000여 명의 해양경찰관을 확보한 해양종합집행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해양경찰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구축해 해적을 소탕했듯이 ‘서해5도특별경비단’을 창설하고 우리 어민과 어족 자원 보호를 위해 우리 수역에서 불법조업하는 외국어선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해 왔다.

그 결과, 연평도 어민들이 인천지역에 내걸은 ‘강력하고 철저한 단속으로 고생하신 해양경찰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라는 플래카드로 돌아왔다.

숫자도 해양경찰의 노력을 방증한다. 올해 상반기 우리 해역 중국어선 조업실태를 분석해보면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역에서 조업하는 중국어선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평균 54척에서 25척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리 해역을 불법 침범해 퇴거 초지한 중국어선 역시 지난해 869척에서 288척으로 67%나 줄었다.

이로 인해 해양경찰에는 그동안에는 없었던 ‘불법조업 외국어선 저승사자’라는 새로운 수식어가 생겼다. 장보고의 후예답게 무에서 유를 낳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다. 해양종사자 인권침해 사범 검거, 악천후 속 섬마을 응급환자 이송, 기름 유출해역 방제 작업, 낚싯배 안전관리 등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국민이 만족하는 해양경찰로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바다에서 국민과 희노애락을 함께 해 온 해양경찰이 오는 10일 65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제64주년 해양경찰의 날 치사를 통해 “국민이 부여한 책임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강인하고 유능한 조직으로 발전해 가기 바란다”라고 해양경찰에 주문했다.

65주년 해양경찰의 날을 맞은 지금 이 순간에도 1만 3000여 명의 해양경찰관은 안전하고 깨끗한 희망의 바다를 국민에게 선사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사항을 기억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사회가 변하면서 이제는 60대를 청년이라 칭한다. 예순다섯 살 먹은 연륜 있는 청년 ‘해양경찰’이 힘차게 외쳐본다. ‘해상왕’ 장보고의 기세를 이어받아 해양주권을 수호하고 국민의 해양안전을 위해 24시간 뛸 준비되어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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